[송태화의 인저리타임] 풀백축구의 도래… ‘로또 크로스’에 답은 없다

입력 2019-01-24 07:00
한국 축구대표팀 수비수 이용이 2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경기장에서 바레인과 가진 2019 아시안컵 16강전에서 득점 기회를 놓치고 괴로워하고 있다. 뉴시스

고전의 연속이다. 쉽게 가는 경기가 없다. 이란, 일본, 호주 정도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암초는 많았다.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듯 순항하기보단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 속을 헤쳐 가는 느낌이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벤투호’ 얘기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16강전을 앞둔 21일(이하 한국시간) 기자회견에서 경기력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말에 뼈가 있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벤투호는 힘겹게나마 22일 바레인을 2대 1로 꺾으며 11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과정 속에서 문제점은 분명히 있었다.

지난해 A매치 상대들을 살펴보면 10월에 맞붙었던 파나마가 그나마 한국보다 전력상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파나마도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력이 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벤투호가 싸웠던 상대 중 칠레, 우루과이 같은 남미의 강호도 있었다. 벤투호는 방어적으로만 경기하지 않았다. 중요시하는 후방 빌드업을 바탕으로 빠른 템포를 유지했고, 중원에서의 유기적인 패스 연결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다. 본인 스스로 정체성을 강조한 만큼 미세한 전술 변화가 있더라도 4-2-3-1 시스템의 큰 틀은 유지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벤투호의 문제점은 세계축구를 선도하는 강호들이 아닌 비좁은 아시아 무대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맞붙었던 상대들에게선 조직적인 수비를 깨뜨리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그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아시아 팀들은 다르다. 대부분의 아시아 팀은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다. 대체로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일대일 대인방어 체제를 유지하며 조직적인 중앙 밀집수비 시스템을 들고나온다. 수비적으로 나서는 상대에게서 공간을 찾아내기 어렵다. 벤투호는 아시안컵에서 이런 상대들을 만나 문제점을 찾아냈다.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을 복기해 보면, 한국의 공격 루트는 이용과 홍철, 김진수 등 양 측면 풀백에 상당 부분 집중돼 있다. 17일 중국전(2대 0)을 제외하면 상대 측면수비수들은 좀처럼 뒷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손흥민과 황의조는 거센 압박 속에서 고립당했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촘촘하게 세로 수비라인 간격을 유지한 상대는 슛할 기회조차 내주지 않았다. 자연스레 중앙에서의 공격 전개엔 문제가 생겼다.

상대의 밀집 수비가 거세다 보니 중앙에서 짧은 패스만 반복됐다. 점유율이 승리의 중요한 척도로 인식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무의미한 백패스나 횡패스로 쌓는 점유율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점유율 통계가 당락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때 확인했던 세계축구 흐름은 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이 아닌 역습이었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점유율 축구팀들이 모두 무너졌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벤투호가 겪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돌파구는 측면에 있다. 중앙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창끝을 측면으로 돌려야 한다. 하프라인을 넓게 활용해 공간을 벌리더라도 상대 수비수들은 먼저 페널티박스 근처 중앙 수비에 집중한다. 간격이 넓게 벌린다는 뜻은 그만큼 상대에게도 공간을 많이 내준다는 뜻이다. 결국 창끝의 영점을 조준하게 된 이는 황의조도, 손흥민이 아니었다. 이용, 홍철, 김진수, 김문환 등 양 측면이 공격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화두가 될 키워드는 ‘점유율 축구’가 아닌 ‘풀백 축구’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축구대표팀 김진수(왼쪽)와 이용. 뉴시스

풀백 축구의 도래, 관건은 크로스다

조별리그 3경기를 복기해보자. C조 ‘1강’으로 꼽혔던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의 방식은 모두 달랐다. 필리핀전(1대 0승)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밀집 수비와 육탄방어. 최전방 공격수까지 자신의 페널티박스 근처로 내려와 조직적인 수비를 펼쳤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 위협적인 측면 역습상황에서 득점을 만들어내 1-0으로 승리하는 것이 그들에겐 최상의 시나리오였겠지만, 무승부 역시 나쁘지 않은 결과였을 테다.

24개국이 참가해 득실만 잘 관리하면 조 3위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만큼, 실점한들 한 점 차 패배 역시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실제로 필리핀은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리해서 라인을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1실점만으로 나쁘지 않게 경기를 마쳤다. 이후 필리핀은 두 번째 상대였던 중국전(0대 3 패)에서 섣부르게 최종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을 시도하고 우레이에게 멀티골을 얻어맞았다. 결과는 참패였다.

한국의 두 번째 상대였던 키르기스스탄(1대 0승)은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내려앉는 운영을 하긴 했지만 경기 내내 소극적으로 일관하진 않았다. 공격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치고 올라갔다. 위협적인 측면 역습도 수차례 선보였다. 3차전 상대인 중국(2대 0 승) 역시 수비적 시스템은 유지했지만 초반 중원에서 맞불을 놓으며 공세적인 움직임을 취했다.

한국이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며 기록한 크로스 횟수는 모두 59개였다. 필리핀-키르기스스탄-중국 순으로 크로스 시도가 많이 나왔다. 공간을 내주지 않는 팀일수록 크로스 숫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59개의 크로스 중 성공은 단 14개. 1·3차전을 뛴 김진수가 18개의 크로스 중 3개를 성공시켰다. 모든 경기를 뛴 우측 풀백 이용이 15개를 시도해 3개를 동료에게 전달했다. 성공률 23.7%. 무의미한 크로스 반복이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전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로 평가된다.

토너먼트 첫 상대인 바레인전은 더했다. 바레인의 골문을 직접 겨냥했던 유효 슛은 단 2개에 불과했다. 한국의 공격이 무뎌진 대표적 이유는 크로스 실패였다. 바레인전에서 시도한 크로스는 총 35개.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합한 크로스의 60%가량이 모두 이 한 경기에서 나왔다.

특히 양측 풀백으로 나선 홍철과 이용이 정규시간 90분 동안 시도한 크로스는 33개 중 동료에게 전달된 것은 단 3개였다. 전반에 시도한 19개의 크로스는 한 개도 연결되지 않았고, 후반 역시 14개를 올렸으나 딱 한 번 성공하는 데 그쳤다. 3.3%의 성공률이다. 이런 통계 수치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은 바레인의 페널티박스 내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다. 김승규의 화려한 선방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조기탈락은 현실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날 승장(勝將)의 영광은 벤투 감독에게 돌아갔지만, 전술적인 관점에서 승리를 가져간 건 바레인의 미로슬라프 스쿠프 감독이었다.

수적 열세에 처한 상황이면 대체로 공은 측면 지역에 머문다. 압박 속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최대한 측면으로 끌어내 황의조와 손흥민에게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상대가 한쪽 지역으로 몰리게 되면 한국의 공간은 반대편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벤투호는 4-2-3-1 포메이션으로 나오지만 이같이 수비적인 팀을 상대할 땐 황인범과 이청용, 주세종 등 중앙 미드필더 라인이 주로 3각 대형을 형성하며 3선 지역까지 직접 가담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 측면 풀백들은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용이 손흥민의 패스 옵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전진해야 하고, 김진수 혹은 홍철은 황의조가 수비벽 속 고립되는 상황을 막아줘야 한다.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풀백 축구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는 이렇듯 승리의 열쇠가 풀백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5일 만나게 될 다음 상대는 카타르. 카타르는 이번 대회를 8강까지 오며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바레인보다 더 강력한 수비조직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역습에서도 매서운 팀이다. 부실한 크로스는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현재까지 드러낸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 만들어낸 5골 중 4골이 세트피스와 크로스에서 시작됐다. 그때도 관건은 크로스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