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폭력성 뒤에 감추어진 수치심

입력 2019-01-23 11:06

공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는데 우선 필요한 것은 아이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여 깊이 아는 것이다. 아이가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이나 증상이 아닌 수치심이나 불안 때문에 감추어 둔 그 무엇에.

11살 남학생 K는 폭력적인 행동이 잦은 편이다. 동생을 때리는 건 물론이고 학교나 학원에서 친구들을 때려 자주 문제가 된다. 평소에 매우 내성적인 아이인데 화가 나면 참지를 못하고 돌변한다.

K는 어려서는 자주 울고 징징거려 아버지에게 “나잇값도 못하고 동생 앞에서 질질 짠다”며 야단을 자주 맞았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아버지 말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성숙하게 보이고 싶고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이 더 커졌을 것이다. K는 아버지가 취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니 마음에서 슬픔이나 두려움을 올라오면 그 감정을 지워버렸다. 차츰 자신의 마음 속에 그런 감정이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다.

문제는 폭력행동으로 나타났다. 친구들이 자신을 ‘약하고 보잘 것 없다’고 느끼는 것 같으면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게 되었던 거다. 아이는 가끔은 두려움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며 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걸 허용하지 않았고 그런 감정에 수치심을 갖게 했다. 아이는 자신의 약한 면을 부인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으로 보상하려 했다.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슬픔이나 두려움, 불안한 마음을 표현해도 되는 안전기지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약한 행동을 해도 부모는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아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내면에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는 걸 전달해야 한다. 언어적으로 그리고 눈빛, 표정, 말의 속도 등 비언어적으로도 표현해 준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를 드려낸다.

아이에게 ‘너의 감정이나 내면의 생각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우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세에서 선입견 없이 출발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도와준다는 자세보다는 아이의 마음, 정서, 생각을 알기 위해 아이와 함께 노력해서 발견해 나간다는 자세가 좋다. 아이에게 감정은 더 이상 수치스런 게 아니라 부모와 같이 탐구해서 알아가는 중요한 그 무엇이 되고, 아이는 난폭한 행동으로 약한 면을 보상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