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16강 토너먼트에서 비교적 수월한 대진표를 받았다. 험로는 호주·우즈베키스탄 중 하나를 만날 수 있는 4강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악연을 쌓은 나라는 대부분 맞은편 대진표에서 결승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16강 상대는 바레인. 양국은 오는 22일 밤 10시(이하 한국시간) UAE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경기장에서 대결한다. 여기서 승리하면 카타르·이라크의 16강전 승자와 8강에서 만난다. 바레인·카타르·이라크 모두 전력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 열세다. 59년 만에 우승 탈환을 노리는 한국의 여정에서 첫 번째 고비는 4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맞은편 대진표 상황은 다르다.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맞은편 대진표에 편성됐다. 이 틈에 동남아시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한국만 만나면 전의를 불태우는 중국도 결승선을 바라보고 있다. 베트남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과 악연을 쌓은 나라들이다. 이 대진표 안에서 어느 누구도 결승 진출을 낙관할 수 없다.
다가올수록 힘 빠질 일본
일본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숙적이다. 한일전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라이벌매치. 1990년대부터 전력이 비슷해진 양국의 승부에서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의(戰意)뿐이다. 한국은 통산 전적에서 78전 41승 23무 14패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3승3무2패로 한국이 근소한 우세를 가져왔다. 다만 이 무승부 중 하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른 기록일 뿐 한국에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한국은 일본과 2대 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0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일본은 이번 아시안컵 16강 토너먼트에서 최악의 대진표를 그렸다. 21일 밤 8시 샤르자 경기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을 갖는다. 여기서 승리해 8강으로 넘어가면 이미 선착한 난적 베트남과 싸운다. 베트남은 전력에서 일본보다 열세지만 기세와 투지에서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다.
두 경기에서 힘을 빼고 4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상대는 이란. 그 다음 단계는 한국, 호주, 우즈베키스탄 중 하나를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결승전이다. 일본은 토너먼트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경기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쉴 틈이 없다는 얘기다.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은 이란
한국과 일본의 승부는 여러 복잡한 요인이 개입된다. 반면 한국은 이란을 상대할 때 냉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란은 통산 전적에서 한국을 압도한다. 30전 9승 8무 13패. 한국의 열세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전적으로 제압은커녕 30%의 낮은 승률을 갖고 싸우는 나라는 이란 정도밖에 없다.
이란은 아시안컵에서 원년 챔피언인 한국의 발목을 반세기 넘게 잡은 나라 중 하나다. 이란은 1972년 태국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을 2대 1로 격파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승리했으면 아시안컵 우승 탈환의 간격을 59년이 아닌 47년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한국은 이란에 치욕적인 대패도 당했다. 1996년 UAE 대회 8강전에서 만난 이란에 2-1로 앞선 후반전부터 5골을 얻어맞고 6대 2로 역전패했다. ‘두바이 대참사’로 기억되는 경기다. 한국은 최근 5경기에서 이란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마지막 승리는 2011년 1월 2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거둔 1대 0 신승. 2010년 들어 1승1무5패로 한국의 열세다. 이란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
‘결승에서 만나자’ 베트남
‘박항서 매직’은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하는 베트남은 20일 UAE 두바이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정규시간 90분간 1대 1로 비긴 뒤 연장전 추가골 없이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대 2로 승리했다. 베트남은 12년 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진출했다. 2007년 아시안컵만 해도 토너먼트가 8강부터 시작됐고, 베트남은 공동 개최 4개국 중 하나였다. 이번 8강 진출과는 상황이 달랐다는 얘기다.
베트남은 다음 라운드에서 탈락해도 손해 볼 일이 없다. 가장 극적으로 16강 토너먼트에 합류한 나라다. 조별리그에서 이란·이라크에 내리 패배한 뒤 마지막 3차전에서 예멘을 2대 0으로 잡고 D조 3위에 자리했다. E조 3위 레바논과 모든 기록(1승 2패 4득점 5실점)에서 같아졌지만 페어플레이 점수로 앞서 16강행 막차에 올라탔다.
‘박항서 매직’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상승세다. 베트남은 2017년 9월 박 감독에게 지휘권을 맡긴 뒤 동남아시아의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1월 AFC U-23 선수권대회 준우승,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 11월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컵 8강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베트남의 결승 진출은 곧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중국의 탈락을 의미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