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은 월드컵과 달랐다. 조현우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북중미와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신들린 선방을 해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대표팀 입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선 김승규가 주전 골키퍼 장갑을 되찾아왔다.
한국은 지난 16일 아시안컵 24강 조별리그에서 중국을 2대 0으로 꺾으면서 3전 전승을 기록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우승 후보답게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 중국을 모두 꺾었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총 4골이 터졌으나 이 중 전술적으로 터진 필드골은 단 1골에 불과했다. 황의조의 페널티킥 골이 1골, 김민재의 세트피스 헤더 골이 2골이었다.
부진한 득점력 속에 무실점으로 골망을 지켜내며 승리의 주인공이 된 것은 골키퍼 김승규였다. 3경기에서 상대가 때린 7개의 유효 슛을 모두 여유 있게 막아냈다. 중국전에선 상대의 전방 압박에도 당황하지 않고 수비수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해 A매치까지만 해도 김승규와 함께 조현우, 김진현에게도 골고루 기회를 주는 듯 보였다. 매달 치렀던 두 차례 A매치에서 김승규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 남은 한 번은 둘 중 한 명에게 돌아갔다. 두 경기 연속 같은 골키퍼를 출전시킨 적은 없었다. 골키퍼 로테이션 체제를 예고한 듯했다. 그러한 벤투의 방식은 아시안컵 와서 깨졌다.
지난 1일 아시안컵 최종 모의고사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0대 0무)을 시작으로 조별리그 3경기까지 선발 골키퍼의 주인공은 모두 김승규의 차지였다. 그의 노련한 빌드업과 발밑 기술이 벤투 감독의 눈에 들었다. 벤투 감독과 함께 온 포르투갈 출신 실베스트레 골키퍼 코치는 킥 정확도가 높은 김승규를 특별히 아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규 역시 벤투 감독 아래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다. 선방 능력과 킥 능력까지 보완해 더욱 안정적으로 수비진을 지휘하고 있다. 이미 전술적인 방향이 설정된 이상 부상 변수나 큰 실수만 없다면 대회 기간 주전 골키퍼를 교체하는 이유는 드물다. 벤투 감독은 과거 포르투갈 대표팀 사령탑 시절에도 대회에서만큼은 안토니오 베투 단 한 명에게 주전 골키퍼 장갑을 맡겼다. 따라서 조현우는 남은 아시안컵에서 단 한 경기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조현우도 자존심을 접고 김승규의 조력자 역할을 든든히 하고 있다. 자신이 전술적 이유로 주전 골키퍼에서 밀려났음에도 단 한 번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면 가장 먼저 김승규에게 달려와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11명만이 승리자는 아니다. 비록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현우와 김진현 역시 59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탈환을 위해 달리는 주역 중 한 명이다. 조현우 역시 지난해 월드컵을 끝마치며 함께 훈련한 김승규와 김진현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선의의 경쟁이 벤투호 최후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