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 박소연 사태’는 구조적 문제?… “개인 잘못 희석되면 안 돼”

입력 2019-01-19 04:00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구조동물 비밀 안락사’ 파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18일 박 대표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습니다. 시민들은 박 대표가 ‘안락사 없는 보호소(No Kill Shelter)’를 표방해 후원을 받으면서도 비밀리에 구조 동물 수백마리를 안락사 시켰다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박 대표 한 명을 ‘악마화’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유기·방치 동물이 셀 수 없이 늘어나는 현실, 이를 방치하는 법과 제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과 관련 예산 부족 등 ‘구조적·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해야 한다는 겁니다. 박 대표도 문제가 불거진 뒤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동물 단체 및 연구소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박 대표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다”고 꼬집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모든 동물단체들이 같은 구조적 문제의 영향을 받는데 왜 케어에서만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냐?”고 묻기도 합니다. 자칫 박 대표 개인에 대한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가 뒤섞일 경우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박 대표에 대한 처벌은 그것대로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후 구조적 문제로 관심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개인 문제와 사회 문제는 구분돼야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람 한 명을 ‘악마화’ 하는 것은 당연히 해선 안 되는 문제”라면서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의 문제는 엄연히 다른데, 이번 사태를 동물의 안락사라는 문제라고만 희석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상임이사는 “(박 대표) 본인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면 이해를 구하고 진행했을 텐데 그 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기 힘드니 숨기고 해온 것”이라며 “사회 구조 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개인이 잘못한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조건에서 (여러 동물단체 중) 케어만 그렇게 했는데 왜 사회 전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일반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잘못에 대한 사과 대신에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희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선량한 활동가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물단체들이 박 대표를 고발한 것을 언급하며 “왜 동물단체가 같은 동물단체를 고발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며 “지금껏 해온 활동들이 동물복지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심지어 동물입장에서는 안락사를 통해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며 “개농장이 사라지지도, 유기견이 없어지지도 않았다”며 “보호소의 상황도 사람들이 개농장이라 부를 법할 만큼 열악했고 입양을 위한 사회화도 포기된 상태였다.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컨테이너에서 비참하게 살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동물권단체 케어 직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들을 무분별하게 안락사시킨 박소연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동물 유기나 동물학대, 제도미비 현실과 케어 사태는 구분돼 논의돼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박 대표는) 안락사의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계속 얘기하지만 케어에서 일어난 일은 엄밀한 의미의 안락사도 아니다”라며 “동물의 삶의질을 고려해 수의학적 판단과 여러 사람의 의사소통 등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시스템 없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로 죽이는 건 안락사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법적으로 위법한 상황이 있으면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어쨌든 케어는 구조동물을 구조하고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표방하며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부분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대표는 다만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며 “이 기회를 통해 무분별하게 발생하는 유기동물의 숫자를 어떻게 조절할지 등 구조적인 문제들을 짚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소연 대표 ‘비공개’ 기자회견서 무슨 말 할까?

박 대표는 1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비공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습니다. 박 대표는 기자들에게 보낸 안내문에서 “비공개 기자회견이니 기사화 하거나 다른 기자들에게 알리는 등 외부로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공지했습니다. 또 “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기자는 출입에 제한이 있다”며 “소란과 난동 등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앞서 박 대표는 16일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을 연기한 바 있습니다. 박 대표는 “지금 새로 생산되는 허위사실 기사들이 너무 많다”며 “하나하나 반박을 다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여 (기자회견 준비에) 하루 이틀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18일로 기자회견이 이뤄졌지만 박 대표는 페이스북에 “금요일(18일) 예정이던 기자회견을 장소섭외 문제로 토요일(19일) 오전 10시로 변경한다”고 미뤘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표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박 대표는 안락사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도, 원칙 없이 안락사가 행해지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표는 “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안락사를 해왔다. 그러나 원칙 없는 안락사를 해온 적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또 사건의 제보자 A씨가 ‘케어 죽이기’를 위해 폭로를 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박 대표는 “동물을 살리기가 아니라 케어를 죽이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해 폭로한 것”이라며 “안락사가 정말 문제라 생각했다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내게 하지 말라고 했어야 했다. 1년 동안 안락사를 하면서 증거자료를 모은 게 말이 되느냐. 케어 죽이기 의도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동물에겐 죄가 없는데…

이런 가운데 케어를 포함한 다수 동물단체는 후원자 이탈로 실음하고 있습니다.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 연대’ 관계자는 “사태 이후 후원자의 10% 이상이 후원을 취소했고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단 후원자뿐만이 아닙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기업들도 후원을 차례로 끊고 있고, 활동가들의 외부 기고도 중단됐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케어 보호소에서 돌봄을 받는 역 600마리의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 후원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 동물단체 카라도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카라 관계자는 “포털 해피빈 기부를 받아왔는데 케어 사태 이후 3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동물사랑과 생명존중이 퍼져나가는 것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였는데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나 동물단체에 대한 불신이 있구나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고 덧붙였습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