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차좀비 애칭 특별, 계속 담금질하는 배우이고 싶어" [인터뷰]

입력 2019-01-21 12:00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차형석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훈.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묘한 기타 선율이 흐르고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지면 어김없이 피투성이인 그가 등장한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에서 끝까지 유진우(현빈)를 쫓았던 차형석을 연기한 배우 박훈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가 극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모습에, 우리가 이젠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게 됐다.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해요. 차형석은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최다 사망 기록을 갈아치운 인물이죠(웃음). 처음엔 ‘무섭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긴 했지만, 스릴러적인 모습에 휴머니즘적인 면모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었고요. ‘차좀비’라는 애칭도 생겨 기분이 좋아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의 한 장면. tvN 제공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한국 최고의 투자회사 대표 유진우가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AR(증강현실) 게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의문의 일들을 다뤘다. 그리고 그 기묘한 일의 중심엔 박훈이 있었다. 그는 극 초반 진우가 게임 속에서 휘두른 칼에 맞아 죽음을 맞았지만, 오류로 인해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로 바뀌어 나타나 그를 계속 위협한다.

NPC가 되고서는 별다른 대사 하나 없었지만, 그의 눈빛 연기가 미스테리한 극의 분위기를 전면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살의 가득한 눈빛을 언제 지었냐는 듯 소탈하게 웃었다.

그는 “맡은 배역을 함축해 보여드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극적인 서사를 지녔지만, 한정된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인 만큼 꾹꾹 눌러 담아 연기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연극을 했던 시간들이 이번 연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슬픈 감정을 말을 빌리지 않고도 표현하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시간이었죠. 오히려 제 기준에서는 대사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굉장히 어려웠는데, 차형석을 단순한 악당이 아닌 다채로운 인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하고, 다행이었어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차형석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훈.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제공


2007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데뷔한 박훈은 다수의 뮤지컬과 연극에 출연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다. 영화와 연극을 통해 얼굴을 비추던 그는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KBS2·2016)에서 최 중사 역을 맡으며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 작품에선 처연하고 안타까운 형석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3주 만에 8~9㎏가량을 감량했다고. 그는 공을 제작진들에게 돌렸다.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송재정 작가님과 가장 사실적인 질감을 잘 구현하는 안길호 감독님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가 정말 궁금했어요. 너무 잘 표현해주셨죠. CG(컴퓨터 그래픽)를 사용하는 만큼 현장에선 촬영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옷이 한 벌이라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 의상팀이 정말 고생을 했어요. 피가 묻으면 옷이 해지니깐 20번 넘게 새로 만들어 바꿔 입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의 한 장면. tvN 제공


연기적인 부분에선 현빈과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다. 현빈보다 한 살이 더 많은 그는 “처음부터 친구처럼 정말 잘 맞았다. 작품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나눴던 게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배려심이 정말 깊어요. 동생이지만 방송 연기 경력은 훨씬 선배이기도 하죠. 상대 배우가 넓게 포용해주다 보니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탈하게 집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요. 좋은 술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의 한 장면. tvN 제공


박훈은 현재 다음 달 11일 방송 예정인 ‘해치’(SBS) 촬영을 진행 중이다. 조선 21대 왕 영조의 청년기를 풀어낸 이 사극에서 그는 이름난 광대이자 무술의 달인 달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차형석과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캐릭터라 더 뜻깊게 다가온다고. 이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담금질하는 게 그가 가지고 있는 목표다.

“선배들께서 연기를 10년 하면 숨을 쉴 줄 알고, 말을 시작할 단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10년쯤 된 이 시점에 차형석이 아주 적절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말을 시작할 타이밍인 거죠(웃음). 역할에 구애받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번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가보려고요. 그게 가장 저 다운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께도 좋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