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파평윤씨 집안에 시집간 덕온공주와 양자 윤용구(1853~1939), 손녀 윤백영(1888~1986)이 한글로 남긴 책과 편지, 서예작품 등 총 68점의 환수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는 행사를 했다.
후손에게서 지난해 11월 일괄 구매한 한글 유산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덕온공주가 단아한 한글 궁체로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이다. 원래 자경전기는 정조 비 효의왕후의 명에 따라 순조가 자경전에 대해 한문으로 지은 책이다. 자경전은 1777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전각이다.
한글본 자경전기는 셋째 딸 덕온공주의 서예 솜씨를 눈여겨본 순조가 자신이 지은 자경전기를 한글로 토 달고 번역해 쓰도록 한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지낸 이종덕 박사는 “자경전기는 조선 왕실의 효 정신이 관통하는 유물”이라며 “특히 글씨는 숙달되고 유려한 정도가 공주 글씨로 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다”고 평했다.
아들 윤용구는 일제강점기 친일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서화가로 어머니의 한글 궁체 맥을 잇고 있다. 고종의 명을 받아 중국 역사를 추려 쓴 ‘정사기람(正史紀覽)’과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인 여성 30명의 행적을 적은 ‘여사초략(女史抄略)’ 등을 남겼다. 특히 여사초략은 당시 12세이던 딸 윤백영을 위해 쓴 것이라 아버지의 지극한 딸 사랑이 녹아 있다.
윤백영이 쓴 것으로는 중국 서한 시대 인물 환소군의 전기인 ‘환소군전(桓少君傳)’ 등이 있다. 그녀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글 궁체 서예작품으론 처음으로 입선한 바 있는 궁체의 마지막 대가다.
이 밖에 덕온공주 어머니 순원왕후가 사위에게 딸의 근황을 묻는 편지를 비롯해 철인왕후(철종비), 명성황후(고종비) 등이 직접 쓰거나 대필해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편지도 돌아왔다. 상궁 출신으로 글씨가 워낙 뛰어나 은퇴 후 서기 직책으로 재고용된 서기 이씨의 대필 편지의 글씨체도 놀랍다.
환수 자료를 이관받은 국립한글박물관 측은 “궁중에서 쓰던 한글 서체인 궁체의 아름다움과 왕실 여성들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며 “오는 4월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