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에서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이 230표차로 부결되면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플랜B’ 가동에 착수했다. 앞서 지난 9일 하원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3회기일 이내 정부가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강제조항을 담은 의사일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 부결 직후 “정부 신임이 확인되면 21일까지 ‘플랜B’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부결 직후 야당이 제출한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될 경우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겠지만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관측이다.
메이 총리가 제시할 ‘플랜B’ 방안으로는 추가 설득을 통한 하원 재표결, EU와의 합의안 재협상, 2차 국민투표 등이 거론된다. '압도적 부결’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에겐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사안이 없다.
하원 내 여론을 뒤집기 위해서는 브렉시트 합의안에서 쟁점이 됐던 ‘백스톱'(Backstop)에 대한 입장 변화가 주요 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스톱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령 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에 통행·통관을 통제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를 말한다. 브렉시트로 과거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유혈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심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브렉시트 전환기간인 2020년말까지 과도기를 두고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체를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백스톱 조항에 따라 브렉시트가 이뤄질 경우 언제까지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남아있을지 합의된 바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추가 합의 실패로 최악의 경우 영국령 북아일랜드만 EU 관세동맹에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당초 메이 총리는 하원에서의 합의안 승인 표결 전 “백스톱 없이는 브렉시트 합의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압도적 반대표에서 보듯 백스톱 조항에 대한 입장 변화 없이는 재표결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백스톱 조항을 수정하려면 EU와의 재협상이 불가피하지만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EU와의 재협상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합의안 없이 오는 3월 29일 예정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예상되는 ‘파국’은 EU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29일 EU 탈퇴의사를 공식화한 영국은 리스본조약에 따라 2년이 지난 시점인 2019년 3월 29일 탈퇴를 눈앞에 둔 상태다.
때문에 현재 합의안 재표결이 어려워질 경우 어떤 형태로든 메이 총리가 EU 탈퇴시한을 3월 29일 이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U도 현재 합의안에 대한 영국 내 부정적 여론을 고려해 브렉시트 일정을 7월까지 미루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브렉시트 관련 2차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추진 동력을 얻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이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국민투표 준비과정에서 찬반 양론으로 국론 분열이 극심해질 것이 뻔한데다 처음 브렉시트를 결정했던 국민투표를 부정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도 상당하다. 최소 2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적인 준비도 빡빡하다.
하지만 영국 내 2차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BMG리서치와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차 국민투표를 ‘찬성한다’는 응답이 46%로 ‘반대한다’(28%)는 여론을 앞질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