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이 15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사상 최대 표차로 부결되면서 유럽연합(EU)과의 합의를 주도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사퇴 위기에 몰렸다.
승인 투표 이전 다수의 전문가들이 투표 부결을 예상하면서 정작 관심은 표차가 얼마나 날 것이냐에 쏠렸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당에서 진행된 유럽연합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선언 승인을 놓고 영국 하원의원 634명이 투표한 결과 찬성은 202표(반대 432표)에 불과했다. 메이 총리가 속한 집권 보수당에서도 118명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영국 의정 사상 정부가 200표 이상의 표 차로 의회에서 패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0표차 부결… “정부의 역사적 패배”
영국과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 전환기간과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에 대한 EU 탈퇴협정을 비롯해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합의하면서 ‘질서있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했다. 2016년 6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2년 5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의회 비준 이전 진행된 하원의 협상 승인투표가 정부의 ‘압도적 패배’로 결론나면서 메이 총리는 거취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앞서 영국 언론들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세 자릿수 이상 표차로 부결되면 총리직 수행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승인투표 부결 직후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가 제출한 정부 불신임안 투표가 16일 오후 7시(현지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승인투표에서 드러난 압도적 반대표는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온 메이 총리의 취약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라고 AP통신은 평가했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 부결 직후 “정부가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재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정국 혼란 불가피
메이 총리가 재신임을 받더라도 향후 가시밭길이 남아있다.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로 영국 총리실은 사흘 내에 ‘플랜B’를 제시해야 한다. 플랜B에는 합의안 재표결 추진, EU와의 재협상, 브렉시트 찬반에 대한 제2의 국민투표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회를 추가 설득해 합의안 재표결을 추진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낮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집권당 내에서조차 이번 합의안에 대한 회의론이 높다는 게 입증된 탓이다. EU와의 재협상 여부도 불투명하다.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오는 3월 29일 자동으로 EU를 탈퇴한다. 영국은 2017년 3월 29일 EU 탈퇴의사를 공식 통보했는데, EU 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조약에 따르면 최종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탈퇴의사 통보 이후 2년이 지날 경우 회원국이 자동으로 EU를 탈퇴하게 된다.
때문에 브렉시트 합의안을 재협상한 후 다시 이를 표결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EU가 현재 합의안에 대한 영국 내 부정적 여론을 고려해 브렉시트 일정을 7월까지 미루는 방안을 고려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재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차 국민투표 역시 법에 따라 시행까지 최소 22주가 걸려 탈퇴 일정을 연기해야 하는데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1차 투표를 뒤집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해 시행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