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15일(현지시간)로 25일째를 맞았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역대 최장 셧다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경신되는 상황이다.
미국 정치를 올스톱시킨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은 57억 달러(6조 4000억원)이다. 엄청나게 큰 돈이지만, 2019년도 미국 전체 예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올해 미국 예산은 4조 4000억 달러 규모다. 우리 돈으로 약 4945조 6000억원이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은 전체 예산의 고작 0.13%에 불과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사정을 빗대며 “전체 예산의 0.13%가 사상 최장의 셧다운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치가 0.13%의 예산에 발이 묶였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미국의 예산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미국의 2019년도 회계연도는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다. 또 한국은 ‘예산안’ 방식으로 국회가 한 번에 통과시키지만 미국은 법률안 형식으로 쪼개서 정부 예산을 처리한다.
2019년도 미국의 예산과 관련한 법률안은 모두 12개였다. 이 중 5개가 통과됐고,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7개 법안은 아직 의회에 묶여 있다.
그러나 통과된 예산 관련 법률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의회가 처리한 법안은 5개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예산 규모를 따지면 75%의 예산이 통과됐다. 덩치가 큰 국방·복지 예산 등이 처리됐기 때문이다.
국토안토부·국무부·농림부·내무부·재무부·상무부 등의 예산 관련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이들 부처가 셧다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NYT는 “0.13%의 예산 사업 때문에 미국이 이 지경인데, 올해 하반기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이 2020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전체 99.87%에 해당하는 국방비·의료보험비·총기 관련 예산 등을 놓고 싸움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전체의 0.13%밖에 안 되지만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멕시코 국경장벽은 자신의 ‘반(反)이민정책’ 상징이다.
민주당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반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히스패닉을 비롯한 이민자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펼치고 있어 역대 최장 셧다운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오전에도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연방 공무원들은 급여를 못 받는데,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는 왜 급여를 받냐”고 비꼬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
NYT는 “셧다운 외에도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생존을 위한 ‘논스톱 정치 전쟁’을 앞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