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연달아 터진 ‘체육계 미투’ 사태에 공개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한 쇄신을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체육계 최고 수장인 이 회장의 관리·감독 실패를 지적하며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 회장은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열린 제22차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앞서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준 우리 피해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한국 체육에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보낸 국민과 정부, 기업, 체육인들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과와 더불어 ‘가혹행위 및 (성)폭력 근절 실행 대책’을 발표했다.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 원천 차단,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방안 확충,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의 외부 전문기관 위탁,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심층 조사를 실시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겠다. 관리·감독의 최고 책임자로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정상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도자들의 부당 행위에 대해서도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간 대한체육회는 내부 관계자들이 징계와 상벌에 관여해 왔다. 이에 체육회가 선수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체육계 관행과 병폐에 대한 자정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 회장은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잘못을 시인했다.
앞서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3개 시민단체는 체육회를 규탄하고 이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상범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체육회가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를 은폐하고 수수방관하면서 오히려 학생들을 병들게 했다. 그 책임을 모두 지고 정화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독립, 외부, 민간 주도의 성폭력 실태조사 실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 ‘성폭력 문제 방관, 방조한 대한체육회 책임지라’는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한 뒤 곧바로 이사회가 열린 장소로 이동해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이 회장은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이사회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인 채로 자리를 떠났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