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현안에 대한 20대 여성과 남성의 인식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7월(1004명)과 11월(1015명)과 두 차례에 걸쳐 19~29세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한국사회의 성평등 현안에 대한 인식조사’를 15일 발표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대 여성 절반에 가까운 42.7%가 “그렇다”고 답했다. 7월에는 48.9%를 기록했다. 여성의 경우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대중화·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대 남성의 경우 10.3%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7월에는 14.6%를 기록했지만 11월 들어 4%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확장되고 있다”며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대의 가치관, 삶의 기획, 정치적 욕구를 검토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됐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서도 남녀 차이는 두드러졌다. 20대 여성의 경우 7월 88.8%, 11월 80.2%로 거의 대부분이 미투 운동에 힘을 싣고 있었다. 20대 남성은 7월에는 56.5%로 긍정 답변이 절반 이상이었으나 11월 들어서는 43.6%로 다소 주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가까운 남성이 미투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특히 20대 여성은 미투 운동을 ‘나 또한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의혹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20대 여성 69.8%는 “그렇다”고 답했다. 20대 남성 역시 절반에 가까운 44.6%가 “무죄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답을 내놨다.
앞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가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아온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여성들을 중심으로 성폭력·성차별 규탄 시위가 연달아 열리는 등 반발이 거세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힘을 이용해 피해자를 성폭행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낙태죄 폐지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74.2%가 동의했고, 남성은 47.6%가 ‘그렇다’고 답했다. “내 몸은 공공재가 아니다”라며 낙태죄 폐지를 촉구한 여성들의 주장이 과거에 비해 폭넓은 공감대를 얻은 듯 보인다. 최근 경찰이 경남의 한 산부인과를 다녀간 여성 26명에게 해당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불러일으킨 일도 있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혜회역 시위를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절반을 넘긴 57.6%가 지지를 표했고, 남성은 15.0%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혜화역 시위는 사실상 처음 열린 여성 집회다. 정확한 집회 명칭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다.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발단이 됐다. 남성 누드모델 사진이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왔고 경찰은 사건 발생 12일 만에 범인을 구속했다. 이를 두고 “경찰이 남성이 피해자인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고 강경하게 대처한다”며 편파수사가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2023세대 여성의 경우 79.4%가 “그렇다”고 답했다. 남성도 비교적 높은 수치인 68.2%를 기록했다. 남녀 모두 7월(여 81.5%·남 71.3%)보다는 소폭 하락했다.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10명 중 7명(7월 70.4%·11월 69.4%)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20대 남성은 10명 중 3명(7월 27.9%·11월 28.5%)만이 동의했다. 남녀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수치다.
‘일상생활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대 여성의 10명 중 7명(7월 79.3%·11월 73.5%)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나, 남성은 10명 중 3명(7월 42.6%·11월 33.1%) 정도만 “그렇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 11월 조사의 하락폭이 컸다. 여성은 5.8%포인트, 남성은 9.5%포인트로 하락했다.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남녀 모두 성차별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도는 젠더가 한국사회의 메인 이슈로서 보편화·대중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각종 젠더 이슈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고, 7월에 비해 11월의 조사 결과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이 의미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슈에 따라 남성 30~40%는 성차별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성평등 의제들을 지지하고 있었다”며 “우리 사회의 성불평등 문제를 풀어나갈 중심 동력으로서의 20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향후 20대의 의식과 정책수요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실질적인 성평등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