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 종철아” 故박종철 32주기… 다시 보는 역사 속 그날

입력 2019-01-14 10:46 수정 2019-01-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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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정권의 탄압과 이에 대한 저항이 극으로 치달았던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시신 한 구가 실려나갔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이었다.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나라 차원의 은폐가 진행될수록 죽음의 진실이 수면으로 비집고 올라왔다. 고문치사였다. 이 사건은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전두환정권이 몰락하게 된 기폭제가 됐다.

전두환정권 말기였던 1980년대 후반,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을 조사 중이었다. 주동자로 몰렸던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을 불법체포했다. 경찰은 박종철에게 폭행과 전기 고문, 물 고문 등을 가하며 박종운의 행방을 캐물었다. 그는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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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를 알게 된 기자가 신문에 2단짜리 기사를 실었다. 사건 다음 날, 의혹이 커질 것을 우려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박종철의 사인은 단순 쇼크사라고 발표했다. 강 본부장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다. 박종철에게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박종철의 시신 부검의는 그가 고문을 당했다고 확언했다. 큰 용기였다. 나라가 박종철을 죽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들불처럼 피어오르자 치안본부는 사건 발생 5일 만인 19일, 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탄압에 분노하던 국민은 규탄 시위를 준비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됐고 민주화운동의 촉매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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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고문 공간, 드디어 시민 품에… 대공분실서 열린 첫 추모제

“보고싶다! 종철아!”
박종철 열사의 기일 하루 전인 13일 오후 2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 섰다. 그가 숨진 장소이자 6월항쟁의 시발점에서 추모행사가 열린 뜻깊은 날이었다.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샌 이들이 “종철아 보고싶다”는 현수막을 들었다. 박종철 열사의 동기, 가족, 친구로 보였다. 이들은 그가 사망한 1987년으로 돌아간듯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1987년 6월 거리를 채웠던 그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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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역사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제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1976년 10월 설립됐다. 주로 고문이 자행됐다. 2005년 과거를 청산하자는 의미로 ‘경찰청인권보호센터’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경찰의 공간이었다. 이곳을 반성의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고 지난달 26일 시민의 공간이 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그동안 여기 올 때마다 마음을 졸였는데 이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니까 마음이 덜 떨린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을 거둔 대공분실 모습. 뉴시스

“유난히도 더웠던 2018년 여름, 바로 옆 남영역을 지나는 기찻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날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도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와 나는 31년 만에 남영동 509호실에서 만났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본다”

추모제 시작과 동시에 영상과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박종철 열사와 그의 아버지 고(故) 박정기씨의 영정사진이 서로 마주 본 채 등장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아들의 곁으로 떠났다. 그는 30여 년을 아들의 몫까지 투쟁하며 민주화에 생을 바쳤다.

추모제에 참석한 김세균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은 “마침내 박종철 열사가 32년 만에 경찰의 굴레에서 벗어나 509호실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던 유동우씨는 “다시는 비인간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배우 김윤석(왼쪽부터), 영화감독 장준환, 작가 김경찬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추모제에는 영화 ‘1987’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과 김윤석 배우, 김경찬 작가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장준환 감독은 “재작년 여름 이곳에 왔을 때 5층에 이상하게 생긴 창문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분이 그리움, 고통, 슬픔을 쌓아 놓으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가졌다”고 울먹였다. 이어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죄송하다”며 “이곳에서 매질을 당해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분들이) 꿈꾸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찬 작가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곳에 왔었는데 (고문 당한) 5층 현장을 지켜보면서 박종철 열사가 여전히 갇혀 계신 느낌을 받아 안타까웠다”며 “그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김윤석 배우는 “이 영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2017년 1월 박종철 열사의 형님과 누님을 찾아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겠으니 지켜봐주세요’라고 말했더니 흔쾌히 믿고 맡기겠다는 믿음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박종철 열사의 누님이 ‘내 동생 종철이는 절대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며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