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결혼 피해 탈출’ 18세 사우디 소녀, 캐나다 망명 ‘성공’

입력 2019-01-14 09:28 수정 2019-01-14 09:29
강제 결혼을 피해 망명을 선택한 사우디아라비아 소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이 12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피어슨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하는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AP뉴시스

강제 결혼을 피해 도망친 18세 사우디아라비아 소녀가 결국 망명에 성공했다. 소녀의 적극적인 구조 요청과 언론의 관심, 국제인권기구의 대처 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캐나다 망명을 승인받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은 12일(현지시간)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부 장관이 직접 공항에 나와 알쿠눈과 팔짱을 끼며 “이 소녀가 바로 용감한 새 캐나다인”이라며 “알쿠눈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하지만 캐나다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알쿠눈은 ‘CANADA’라고 적힌 회색 후드티를 입고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제공한 파란색 모자를 쓴 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알쿠눈이 지난 7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 내 호텔에서 의자와 매트리스 등으로 객실 문을 막고 그의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알쿠눈은 캐나다 망명이 승인된 직후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공항을 경유해 토론토에 도착했다. 그는 항공기 안에서 여권과 와인 한 잔을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오마이갓(OMG), 내가 캐나다에 있다. 해냈다”고 적기도 했다.

사우디 고위관료의 딸인 알쿠눈은 지난 5일 가족과 함께 쿠웨이트에 머물다가 호주로 망명하기 위해 혼자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알쿠눈은 망명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강제 결혼을 시키는 사우디에서는 일이나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방콕에서 경유편을 기다리던 중 알쿠눈은 태국 경찰에 의해 사우디로 강제 송환될 뻔했다. 하지만 알쿠눈은 억류된 공항 호텔에서 의자와 매트리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송환을 거부했다. 특히 그는 트위터에서 “집에 가면 나는 100% 죽는다”며 “가족은 6개월간 나를 가두고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호소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알쿠눈의 필사적인 구조요청에 언론과 국제인권기구가 움직였다.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앞다퉈 알쿠눈의 사연을 보도했고, UNHCR은 호주와 캐나다 정부에 그의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했다. 결국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 왔다”며 알쿠눈의 망명을 허용했다.

한편 알쿠눈의 망명을 계기로 여성 인권운동가 체포를 두고 외교 갈등을 빚었던 캐나다와 사우디의 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는 지난해 8월 프릴랜드 장관이 “사우디 인권운동가 사마르 바다위의 석방을 요구한다”고 밝히자 캐나다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캐나다에 투자한 자산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