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구상에 없는 것일까. 자신의 생일날 부상으로 대회를 마감한 나상호를 대신해 대체 발탁되며 59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 탈환을 노리는 벤투호에 극적으로 막판 승선했으나 경기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간 벤투 감독은 여러 선수에게 고루 기회를 줬으나 유독 이승우에겐 차가웠다. 이승우가 벤투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벤투 감독의 데뷔 무대였던 지난해 9월 코스타리카전이 전부다. 고작 7분간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후 지난해 10월 A매치에서도 명단에는 포함됐으나 출전 기회를 받을 수 없었다. 벤투 감독은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며 공개적으로 이승우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이번 아시안컵 대체발탁 이전까지 벤투호에 이승우의 자리는 없었다. 이번 합류도 나상호의 부상 탓이지, 초기 벤투 감독의 구상에 이승우는 없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벤투 감독의 이승우 외면은 계속됐다. 한국은 12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C조 2차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1대 0으로 승리했다. 김민재의 헤딩슛에 힘입어 거둔 신승이었다. 잦은 패스미스와 결정력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70.9%대 29.1%로 월등하게 앞서고 있던 볼 점유율은 의미가 없었다. 지난 7일 필리핀전(1대 0승)과 같은 문제였다. 빡빡하게 세로 수비라인 간격을 유지한 수비수들을 상대로 공격을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위협적인 슛 한번 날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예상외로 키르기스스탄은 경기 내내 소극적으로 수비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공격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치고 올라갔다. 위협적인 측면 역습도 수차례 선보였다. 이에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 선수들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벤투 감독은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2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이날 활약이 미미했던 구자철 대신 주세종을 투입한 것이 첫 번째 카드였다. 미세한 전술적 변화가 있었다. 황인범이 좀 더 전진해 공격에 가담하며 주세종이 중앙 미드필더에 자리 잡았다. 두 번째는 황의조 대신 지동원을 투입한 것이었다. 반복되는 공격 패턴에 상대 수비수들이 적응하자 측면공격에 좀 더 힘을 싣겠다는 계산이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던 상황에서 모두 공격적인 교체였다.
남은 교체카드 1장은 사용하지 않았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이승우는 끝까지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었다.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정예요원 23인 중 공격수와 미드필더로 선발된 선수들은 12명. 이중 단 1분조차 경기에 나서지 못한 선수는 이승우와 손흥민뿐이다. 손흥민은 소속팀 토트넘과의 합의로 15일 뒤늦게 팀에 합류한다. 사실상 벤투 감독이 구상하는 2선 공격수에서 이승우의 자리는 없다는 뜻이다. 사용하지 않은 교체카드 1장이 이승우에게 가져다준 무게감은 컸다.
한국은 오는 16일 중국과 3차전을 갖는다. 양 팀 모두 2승을 거뒀다. 조 1위 결정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기는 팀이 1위가 된다. 다만 중국이 득실차에 앞서 비기기만 해도 1위 확정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합류 직전까지 토트넘에서 강행군을 이어간 손흥민 카드를 곧바로 꺼내 들기엔 무리가 있다. 골 결정력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지난 1·2차전을 복기해보면 공격진 변화는 필요하다. 이승우는 지금쯤 이미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시차 적응을 마쳤을 터. 만일 중국전에서 또다시 그라운드를 밟은 이승우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남은 토너먼트에서도 그에게는 그늘이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