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0만원 받으면서 파업?”…국민은행 파업 둘러싼 복잡한 시선

입력 2019-01-13 15:47 수정 2019-01-13 16:57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KB국민은행 영업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이자 장사하는 귀족 노조의 배부른 파업 아닙니까?” (은행 고객 A씨)

KB국민은행 노조가 지난 8일 19년 만에 총파업을 실시하자 은행권을 바라보는 고객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평균 연봉이 9100만원인 은행 직원들이 더 높은 성과급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고객 편의를 볼모로 삼았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들은 억울함을 주장한다. 국민은행의 한 직원은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을 높이는 건 경영진들의 고연봉 때문”이라며 “고액 연봉자라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느냐.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서로 목줄이 더 좋다며 다투는 상황 같다”라고 13일 말했다.

은행원들의 하루짜리 파업은 금융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복잡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독과점 시장을 기반으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이자 간 차이로 인한 수익)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강성노조와 경영진의 갈등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일각에선 총파업 당일 큰 혼란이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은행 인력을 더 감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은행 거래 상당수가 인터넷·모바일뱅킹,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서 ‘은행 무인화’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노조 입장에선 성과급 등 원하는 요구 조건을 일부 받아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상처뿐인 파업’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의 점포 통폐합과 임직원 수 감축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점포는 2015년 9월 기준 5126개에서 지난해 9월 4708개로 418개(8.2%) 줄었다. 이 가운데 NH농협은행을 제외한 4곳 은행의 직원은 2017년 기준으로 4313명 감소하며 5만9591명을 기록했다. 일선 점포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제는 IB(투자은행)나 디지털 등 다른 ‘특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직원들 사이에도 팽배하다”고 전했다.

노노(勞勞) 갈등도 불거졌다. 정규직 은행 직원들이 파업한 날에 고초를 겪은 건 비정규직인 영업점 보안직원과 콜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었다는 것이다. 한 국민은행 고객은 “파업 당일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이 ‘인터넷뱅킹으로 하시라. ATM은 가능하다’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더라. 그 목소리가 너무 지쳐 보여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직원의 파업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들이 매년 10억원 넘는 연봉을 받는 상황에서 직원들도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선 은행의 한 직원은 “1만6000여명 직원들이 1년에 3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거두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며 “다른 은행들과 비슷한 수준의 성과급은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행원도 “솔직히 다른 은행 입장에선 국민은행 같은 큰 은행이 흔들리면 고마운 일이지만 같은 은행원으로서 매번 무리한 목표에 쥐어 짜이는 현실을 생각하면 정당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노조 측은 지나친 성과주의 경향을 지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금처럼 실적 위주로 고과를 매기는 체계에서는 돈 많은 ‘우량 고객’ 위주의 영업이 되고 돈이 안 되는 서민금융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은행원은 “은행을 방문하는 사람의 90%는 보안카드를 만들거나 단순 입출금 업무를 보는 고객들”이라며 “고과에 영향이 없는 이런 고객들은 뒷순위로 밀려나고 신용카드 발급이나 우량 대출 취급 등의 업무가 최우선 순위가 된다. 전체적인 금융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파업 당일 혼란이 크지 않았던 것도 예고된 파업이라 은행 측이 업무 혼선에 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파업 다음 날 국민은행 점포에는 평소보다 많은 고객이 방문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권에 쏟아지는 냉정한 비판은 현실이다. 예대마진에 기반을 둔 안정적 수익 구조에 취해 혁신에 미흡하고, 주주 등에 지급하는 배당 등에 인색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이신영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은행산업 영업 현황 및 경쟁도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은행은 오랜 기간 까다로운 진입여건 등으로 안정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해왔으며 산업 지형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드러난 채용비리 사건 등으로 은행권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은 실적을 내야 하는 사기업이지만 그와 더불어 많은 사회적 책무도 요구받는 업종”이라며 “서민금융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은행권 전반의 신뢰도 제고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