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조직위원장 선발 공개 오디션’이 10일 첫 포문을 열었다. 3~40대의 젊은 후보들이 연륜 있는 ‘고스펙’ 후보자들을 꺾는 이변이 속출한 가운데 당적을 옮기거나 지역구를 옮긴 ‘철새 정치인’들과 ‘올드보이’들은 잇따라 낙선하며 체면을 구겼다.
한국당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밀실·비공개로 진행돼 왔던 조직위원장 선정 작업을 유튜브에 생중계하는 정치 실험에 나섰다. 조직위원장(구 당협위원장)은 지역구 관리를 맡는 자리로 지역 기반을 다질 수 있어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하다.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조직위원장 임명 과정을 투명화하면서, 후보자 이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정치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 강남을의 조직위원장을 뽑는 공개 오디션에서는 정원석(31) 스타트업 ‘청사진’ 대표가 승기를 잡았다. 88년생인 정 대표는 이번 조직위원장 오디션의 최연소 도전자다. 이날 처음으로 등판한 정 대표는 같은 지역 오디션에 도전한 이수원(46) 전 국무총리실 정무운영비서관과 이지현(43) 전 서울시 시의원을 꺾고 최종 승자가 됐다. 중간 점수 집계에선 2등이었지만, ‘젊음’과 ‘변화’를 내세우며 이 전 비서관을 한 점 차로 꺾는 역전승을 이뤄냈다.
송파병 조직위원장을 두고는 김성용(33) 비대위 산하 정당개혁위원회 위원이 김범수(46) 세이브 NK 대표에게 한 점 차로 신승했다. 김 위원은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 출신으로 줄곧 당 안에서 청년 정치를 해온 인물이다. 경기 안양만안·부산 사하갑 조직위원장 오디션에서도 청년보수단체 ‘젊은 한국’의 김승(43) 대표와 김소정(41) 부산 사하구 의원이 5~60대 후보들을 꺾고 승리했다.
반면 철새 정치인과 ‘올드보이’들은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주중대사를 지내며 친박계 핵심으로 불렸던 3선의 권영세(60) 전 의원은 황춘자 전 용산구 당협위원장에게 비교적 큰 점수 차로 패배했다. 서울 영등포을에서 3선을 한 권 전 의원은 지역구를 바꾼 탓에 오디션 전부터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권 전 의원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용산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나왔다”고 강조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용산 표심을 닦아온 황 전 당협위원장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오디션 후보자들은 50여명의 현장평가단과 6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각 분야의 질문에 답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식으로 경쟁을 펼쳤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동이사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심사위원과 현장 평가단의 ‘송곳 질문’에 답해야 하다 보니 경력이나 학력 등 스펙과 상관없이 ‘내공’이 강한 후보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개 오디션 특성상 임기응변에 강한 후보들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한 후보가 외워온 자기소개를 다 하지 못하고 대본을 보는 모습을 보이자 유튜브 생중계 창에는 곧바로 “정답을 외우는 사람보다는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올라오기도 했다.
점수 집계와 결과 발표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뤄져 공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복하는 과거의 후진적 모습도 사라졌다는 평가다. 권 전 의원은 결과 발표 뒤 평가방식에 의문을 나타내면서도 “평가에 응한 이상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공개 오디션이 그동안 고질적으로 비판받아온 금권 밀실 공천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