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 탈환에 나서는 정예요원 중 가장 장신의 선수는 기성용(189㎝)이다.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황의조(184㎝)와 황희찬(177㎝), 손흥민(183㎝) 역시 후방에서 머리를 겨냥하고 크로스를 올리는 롱볼 축구하고는 들어맞지 않는 비교적 단신 선수들. 부상으로 아쉽게 대회를 마감한 나상호(173㎝) 역시 그랬다. 지동원(188㎝)이 있긴 하나, 헤더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좌우 측면에 있는 동료 선수들과의 연계에 집중하는 유형으로 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파괴력 있는 장신 공격수는 축구 역사의 시작과 함께 중요한 공격 옵션 중 하나로 꼽혀왔다. 상대에 따라 전술과 경기 운영이 달라져야 하는 만큼, 장신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해 득점을 노리는 것은 또 하나의 분명한 공격루트다. 게다가 평균 신장이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동아시아팀들을 상대론 이러한 장신 공격수들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는 충분하다.
공격수의 높이를 활용해 골문 앞 제공권 싸움에서 승부를 거는 것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대부분의 팀이 하나씩 숨겨두고 있는 카드다. 객관적인 전력상 약체에 있는 팀들이 강팀을 상대할 때 많이 사용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장신 공격수들은 이기고 있을 때나 지고 있을 때, 모든 상황에서 조커로 활약할 수 있다. 그런데도 벤투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 최종 23인에서 그러한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선발하지 않았다. 부임 초기부터 그랬다. 선수단 낱낱을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주축들을 이식했지만, 김신욱(198㎝)의 이름은 없었다. 석현준(190㎝)이 황의조에 이은 두 번째 옵션으로 활약하며 벤투호에 힘을 보탰지만, 최종 아시안컵 명단에선 탈락했다.
벤투 감독은 공격수들에게 역시 최전방부터 쉬지 않고 압박을 시도하며 적극적인 수비참여를 주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격수들 역시 많은 활동량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들이 벤투호에서 끝내 선택받지 못한 이유였다. 전통적인 하나의 공격 루트를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많은 팀은 한국을 상대로 수비 일변도 전술을 들고나온다. 지난 7일 레이스의 첫 시작이었던 필리핀전 역시 그랬다. 모든 선수가 페널티박스에 잔뜩 내려앉아 연습 된 플레이를 바탕으로 단단한 수비를 펼쳤다. 황의조의 결승골로 간신히 1대 0 승리를 맛보긴 했지만, 총 5개에 불과했던 유효슛에서 알 수 있듯 내용 면에서 합격점을 받긴 어려웠다.
수비적으로 나오는 상대의 공간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장신 공격수에 대한 짙은 향수는 남을 수밖에 없다. 투박한 공격수를 제외하는 대신 공격상황에서의 스피드와 세밀함을 택한 것은 벤투 감독 자신이다. 필리핀은 벤투호가 치렀던 지난 7차례 A매치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수비 일변도의 팀이었다.
축구 역사상 수비 일변도로 나오는 상대에게서 공간을 찾아내지 못해 무너진 우승후보국들은 많았다. 높이가 사라진 만큼 속도와 역동성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축구에서 모든 것은 결과론적 얘기다. 벤투 감독 자신이 선택한 방법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실패한 고집이 될 수 밖에 없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