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와 히딩크의 ‘자율’… 그들의 라커룸

입력 2019-01-10 12:00
9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훈련 지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난 경찰이 아니다. 매번 감시하고 관리하는 분위기보다는 선수들이 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그들의 자유를 존중할 것이다. 다만 최대한 자율적으로 하되 그에 따른 책임은 선수의 몫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해 12월 20일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할 23인의 명단을 발표하며 이처럼 말했다. 선수들에게 훈련 시간 준수와 같은 최소한의 규제만 하겠다는 뜻으로, 자율을 강조한 선수단 운영방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식사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가 내세운 유일한 규율이다. 식사하는 동안만큼은 인터넷 서핑에 넋을 놓고 있기보다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라는 취지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선수들의 훈련 외 사생활은 감독과 코치진 영역 밖의 일이다. 필리핀전을 앞두고 감독과 선수단 전체 미팅이 단 두 차례에 불과했을 정도로 미팅 역시 최소화했다.

거스 히딩크 중국 U-21 대표팀 감독. 뉴시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닮아있다.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과 규제보다는 선수들의 자유를 존중한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라커룸 내에서 한 일은 선수들끼리 ‘형’이란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이었다. 선후배 위계질서나 상명하복 구조가 경기에 독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축구에 고착화됐던 선후배 문화를 깨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선수끼리 대화하고 경쟁하도록 했다.

짧은 말 속에 핵심을 담는 화술 역시 그렇다. 딱딱하고 정석적이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래 지난 다섯 달 동안 A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며 단 한 순간도 질문에 망설인 적이 없었다. 맺고 끊는 것이 명확했다. 다만 원칙을 어기는 선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엄격한 복장 규정과 훈련시간 엄수 등이 그렇다. 특히 훈련장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때가 많은 만큼 선수 한 명이 늦으면 전체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벤투 감독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면 “그냥 놓고 출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말했던 ‘책임’이다.

이렇듯 벤투 감독은 선수들의 자율적인 준비를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반세기를 넘겨 탈환하지 못한 아시안컵 타이틀을 향한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