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모창민(34)은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성균관대에 진학해 장타력을 과시했다. 그 덕분에 2008년 2차 1라운드 3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입단 첫해 91경기에 출전했다. 130타수 29안타, 1홈런, 타율 0.223에 그쳤다. 그나마 도루 10개가 있었다. 2009년에도 92경기에 출전했지만 27안타, 4홈런 타율 0.237에 머물렀다. 급기야 2010년에는 65경기에 출전해 11안타, 1홈런, 타율 0.183으로 떨어졌다.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12년 9월 제대 후 복귀해 15게임에 출전해 타율 0.250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어 출전했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우승 반지를 끼지 못했다. 그해 겨울 NC의 특별지명으로 팀을 옮기게 됐다.
모창민은 2013년 주전 3루수로 뛰며 이름을 알렸다. 108경기에 나와 395타수 109안타, 12홈런을 쳤다. 타율 0.276을 기록했다. 첫 두 자릿수 홈런이었다. 2014년에는 122경기에 출전해 110안타, 16홈런, 72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수비 불안이 겹치며 출장 경기 수가 확 줄었지만, 타율은 0.290까지 끌어올렸다.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삼성 라이온즈 박석민(34)의 FA 이적 소식이 들려왔다. 주포지션이 같은 3루수였다. 2016년 초 왼쪽 무릎 수술까지 받았다. 7월에 복귀했지만 63경기 출장에 그쳤다. 절치부심했다.
2017년 개인 최고의 해를 만들어냈다. 136게임에 출전해 474타수 148안타, 타율 0.312를 기록했다. 17홈런과 90타점, 64득점을 올렸다. 모든 게 커리어하이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18년에는 부상 등으로 등록 일수가 108일밖에 되지 않았다. 80안타와 17홈런, 타율 0.279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FA 시장에 나왔다. 일주일여 뒤 잔류 계약이 맺어졌다. 계약 기간 3년 최대 20억원의 계약이었다.
모창민의 장타력은 누구나 인정한다. 주루 능력도 갖췄다. 그러나 문제는 수비와 부상이다. 그런 탓에 지명타자로 나설 것이라는 말이 많다. 그런데 박석민이 올해 초반 합류가 불투명하다. NC는 꼴찌까지 떨어졌다. 양의지(32)가 두산 베어스에서 옮겨왔지만, 내야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하다. 그게 모창민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신생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이호준의 뒤를 이어 NC 선수단 전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