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배달 소년의 칸 입성… ‘가버나움’ 캐스팅 뒷얘기

입력 2019-01-08 21:32

레바논 난민의 처절한 삶을 그린 영화 ‘가버나움’의 캐스팅 비화가 8일 공개됐다.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가버나움’은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 온 12살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고 온 세상의 관심과 응원을 받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는 극 중 상황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비전문 배우들이 등장해 이목을 모은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많은 지역을 오가며 길거리 캐스팅과 오디션을 진행한 끝에 자인, 라힐, 요나스, 사하르 등 ‘가버나움’의 주요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들을 찾아냈다.

나딘 라바키 감독과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장장 6개월 동안 500시간이 넘는 촬영본을 만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인물을 찍기 위해 ‘액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촬영을 시작하는 등 유연한 방식을 취했다.


특히 시리아 다라에서 태어난 주인공 자인 알 라피아는 내전으로 인해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정착하면서 ‘가버나움’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으로, 베이루트 지역에서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출연하게 됐다.

실제 자인 알 라피아는 영화 속 자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학교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 12살이었던 자인은 자신과 똑 닮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첫 연기였음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라힐 역으로 아프리카 출신 인물을 원했던 나딘 라바키 감독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를 캐스팅했다. 영화 속에서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을 찍은 다음 날, 실제로 당국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와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칸영화제 참석 일주일 전까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증명할 그 어떤 서류도 없었던 것이다. 영화제에 참석하기까지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쳤고, 이는 영화 속 모습과 겹친다.

촬영 중 친부모가 체포된 요나스 역의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도 캐스팅 감독과 3주 동안 함께 살아야 했다. 자인의 동생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은 베이루트 거리에서 껌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본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탁돼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캐스팅은 오늘날 레바논의 일상적인 현실을 묘사하기 위한 필수요건이었다는 게 제작진의 말이다. 영화 속 모든 장면에서 픽션과 현실이 어우러지며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영화는 오는 1월 24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