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분기 ‘어닝쇼크’로 반도체 고점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반도체 슈퍼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삼성전자는 1~2년 전 고점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이후로도 매 분기 최고 실적을 기록해왔다. 하지만 반도체 수요 부진이 실적 악화로 이어지면서 4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 정도로 내려앉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스마트폰 시장 포화에 ‘애플발 쇼크’까지 겹치며 올해 반도체주가 본격적인 조정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설명대로 하반기 반등을 기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하방 지지선이 확실한 만큼 저가매수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8일 코스피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68% 떨어진 3만8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어닝쇼크 여파로 코스피지수도 0.58% 내린 2025.27에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하락한 건 3거래일 만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잠정 매출액이 59조 원, 영업이익이 10조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28.7% 줄었다. 역대 최대 성적을 낸 전 분기(17조5749억 원)와 비교하면 38.5%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최근 3개월 동안 반도체 업종의 올해 이익 추정치는 20조 원 정도 하향조정됐다. 증권사들도 지난달 반도체 수요 둔화와 스마트폰 시장 포화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 영업이익 추정치를 여러 차례 내렸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달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13조2000억 원으로 낮춰 잡았다. 하나금융투자도 지난달 실적 추정치를 3번 조정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2조5000억 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낙폭이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추정치에 훨씬 못 미치는 10조8000억 원에 그쳤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이익 추정치가 크게 하향됐지만 추정치 하향은 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도 “시클리컬(주기적인)의 특징을 가진 반도체의 수급 악화와 스마트폰 사업의 구조적 난관으로 인해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은 하반기까지도 완만한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반도체 대형주인 SK하이닉스의 전망도 어둡다. KB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 2019년 영업이익은 22조 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는 17조 원 아래로 조정된 상태다. ‘애플 쇼크’가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애플이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기업의 실적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대형주는 애플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업계는 이중 SK하이닉스의 매출 의존도가 좀 더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올해 반도체의 실적이 상반기에 낮고, 하반기에 반등하는 ‘상저하고’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계절적 비수기와 맞물리면서 심화된 반도체 수급 악화가 하반기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무역갈등 등 악재가 주가에 반영된 상태라 저가 매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수요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바닥을 찍고 개선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공급 측면에서도 중국 반도체기업이 D램을 선단 공정으로 양산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