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복수” 성폭행 피해 부부 억울함 풀렸다… 가해자 ‘징역 4년’

입력 2019-01-08 06:01
SBS 캡처

성폭행 피해로 법정 싸움을 벌이던 중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30대 부부의 억울함이 풀렸다.

대전고법 제8형사부(전지원 부장판사)는 7일 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 박모(38)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징역 4년 6개월, 40시간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대전고법은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최초에 피해자가 먼저 모텔을 가자고 했고 성관계를 안 가졌다고 부인했으나 이후 진술을 번복했고,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이혼을 하겠다고 말한 점에 대해 납득할 만한 근거와 증거 또한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파기환송심에 제출하겠다는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았고 진술 또한 일관되지 않고 모순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죄질의 수법이 매우 나쁘고 재범의 위험성도 높은 데다 피고인에게 저지른 대부분의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피해자 대처 양상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의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라는 대법원의 환송판결 취지와 환송 후 새롭게 추가 심리한 사정을 고려해 판단한 판결이다”고 밝혔다.


폭력조직원 박씨는 2014년 충남의 한 모텔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해칠 것처럼 협박해 친구 아내인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조직 후배들을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폭행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해 박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성폭행한 혐의에 대해선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인데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2심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 부부는 1심에서 성폭행 혐의가 무죄로 나오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 3월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부부가 남긴 유서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죽어서도 끝까지 복수하겠다’ 등 박씨를 원망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1·2심 재판부는 모텔 CCTV에 찍힌 피해자의 모습이 강간 피해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화면 속 A씨가 자발적으로 모텔로 들어갔으며 출장 간 남편에게 피곤해 잠을 자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강제에 의한 성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대법원이 2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1·2심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특정 성별에 대한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내용은 수사기관부터 법원 재판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라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 박씨의 강간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