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규약 84조에는 ‘선수계약의 양도’가 규정돼 있다. 1항은 소속선수(육성선수 포함)와의 선수계약을 참가활동기간 중 또는 보류기간 중에 선수와의 협의를 거쳐 다른 구단에 양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2항에는 선수계약이 양도되는 경우 선수 계약상 양도구단의 일체의 권리와 의무는 양수 구단에 승계 또는 이전된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야구 규약 174조에는 특례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직전 정규시즌까지 다른 구단에 소속했던 FA와 선수계약을 체결한 구단은 제84조에도 불구하고 선수계약 체결 후 1년 동안 해당 FA와의 선수 계약을 다른 구단에 양도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두 조항을 위배하면 176조가 정한 징계를 받게 된다. 구단은 3년간 1차 지명권 박탈, 해당 임직원은 1년간 직무 정지, 해당 선수는 당해 연도 FA 신청자격 박탈 및 1년간 임의탈퇴선수 신분공시라는 엄청난 징계를 받게 되어 있다.
두 규약 사이의 틈새를 이용한 게 이른바 ‘사인 앤드 트레이드’다. 174조에 나오는 다른 구단은 원소속구단이 아닌 FA 획득 구단이다. 그렇다면 원소속구단이 내부 FA 선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야구 규약 84조에 따라 선수의 권리와 의무를 양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뒤 트레이드를 통해 FA 획득구단에 해당 선수를 넘겨주면 두 규약 사이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되면 야구 규약 172조에 규정한 ‘FA 획득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1항은 해당 FA 직전 연도 연봉의 200%와 20명의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넘기도록 하고 있다. 2항은 해당 FA 직전 연도 연봉의 300%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활용했던 게 지난해 1월 10일이었다. 채태인(37)은 소속 구단인 넥센 히어로즈와 FA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틀 뒤 롯데 자이언츠 투수 박성민(21)과 맞트레이드 됐다. 이른바 ‘사인 앤드 트레이드’다.
협상이 늦어지면서 올해 FA시장에서도 사인 앤드 트레이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일부 선수들이 먼저 이를 요청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FA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인 앤드 트레이드는 베테랑 선수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새로운 길이라고 하지만, 야구 규약의 틈새를 이용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정말 필요하다면 야구 규약을 정비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베테랑을 정리하려는 원소속구단과 보상금·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으려는 FA 획득구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편법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