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아웃사이더’로 불렸던 샌더스 의원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혜성같이 등장했으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패했다.
그는 더 이상 비주류와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를 놓고 샌더스 의원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샌더스 의원에게 악재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샌더스의 2016년 대선 캠프에서 발생했던 성추문과 성차별 의혹이 2020년 대권 도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NYT는 “진보의 아이콘이 ‘미투(ME TOO) 운동’과 싸워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샌더스 의원이 미온적인 대처로 여성들의 지지를 잃을 경우 대권 도전은 물거품은 될 가능성이 크다. 미투 운동의 영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한 혐오감으로 미국에서 여성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NYT에 성추문 피해 사실을 밝힌 여성은 현재까지 3명이다. 이들은 2016년 대선 캠프에서 샌더스의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사람들이다.
길리아나 디 라우로는 2016년 샌더스 대선 캠프에서 히스패닉계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을 짜는 일을 맡았다.
라우로는 2016년 2월 민주당 경선을 위해 네바다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캠프 고위 관계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 관계자는 라우로에게 “곱슬머리가 예쁜데, 한번 만져 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라우로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머리카락을 만지는 줄 알고 동의해줬다”면서 “그런데 그는 계속 머리를 ‘성적으로(sexual way)’ 움켜쥐고 만졌다”고 말했다.
라우로는 자신의 팀장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때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팀장은 “만약 그 사람보다 젊은 남자가 그렇게 했다면 당신은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는 것이다.
사만다 데이비스는 뉴욕주와 텍사스주의 지역 선거운동을 담당했다. 데이비스는 “캠프 내의 상사가 그의 호텔방으로 오라는 요구를 거절한 이후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마샤 멘디에타도 “2016년 시카고 유세를 갔을 때 알지도 못하는 남자 3명과 한 방에 자라는 지시를 받고, 공포에 떨었다”고 토로했다.
성차별도 있었다. 뉴욕주와 텍사스주의 캠프 책임자였던 데이비스는 “월급으로 2400달러(260만원)를 받았는데, 내게 보고하는 젊은 남성은 5000달러(550만원)을 받는 사실을 알고 항의를 했더니, 월급이 올라갔다는 것”고 말했다.
NYT는 샌더스 캠프의 급여 정보에 접근이 가능했던 여성들은 남녀 간 월급 차이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라 슬러맨은 “회의 석상에서 성차별적 언행을 하는 캠프 인사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으나 변화를 약속하는 어떤 대답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 선거캠프 관계자를 개인 비서로 여기고 잔심부름을 시키는 인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피해 여성들은 “샌더스가 2016년 캠프 내 성추문과 성차별에 대한 유감 표명없이 2020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성추문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여전히 샌더스 주변을 감싸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 샌더스 캠프 내에서 성추문이 발생했던 이유로 무명의 샌더스가 갑자기 뜨면서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캠프에 급속히 유입됐다는 점이 지목된다.
샌더스 역시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캠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스태프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전국 유세에 집중하느라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당시 캠프 고위관계자는 “지역 유세에서 방을 잡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경선 후보자가 여성이었던 힐러리였다는 점도 성추문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힐러리에 맞서 일부 남성지지자들이 “버니 브로(형제·bro)”라고 남성 편향적인 구호를 외치는 등 캠프 내에서도 마초적인 분위기가 있었으나 ‘샌더스 열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NYT는 진보를 상징하는 샌더스이기 때문에 성추문·성차별 의혹이 더욱 크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샌더스가 이 문제를 수습하는데 실패할 경우 진보적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