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보여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등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검정색 코트에 10여명의 참모들을 대동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낭독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골목길 성명’.
느와르 영화에나 나올법한 골목길 성명으로 세간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전씨가 1995년 이후 24년 만에 다시 법정에 강제로 끌려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오는 7일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앞두고 공판 기일을 늦춰달라고 광주지법에 요청했지만 당초 일정대로 방청권이 배부되는 등 재판 진행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지방소득세 체납해소에 나선 서울시의 첫 가택수색으로 가전제품과 가구 등 일부 재산에 압류딱지가 붙고 100억원대 연희동 자택마저 ‘공매’ 절차가 진행 중인 전씨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전씨는 올 들어 변호인을 통해 신경쇠약 등을 이유로 재판출석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재판부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다.
전씨는 지난해에도 알츠하이머 투병 등을 이유로 수차례 재판부 관할이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예정된 재판에도 일방적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씨가 특별한 이유 없이 또다시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 구인장을 발부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이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방하고 ‘성직자가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등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망한 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자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