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간 협력사업 속도에 대한 불만을 연일 드러내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는 4일 ‘속도조절론 에 과감한 자주적결단으로 맞서야’라는 제목의 글에서 “하루빨리 평화롭고 번영하는 통일강국에서 살려는 8000만 겨레의 열방에 비춰볼 때 북남관계 개선의 속도는 더디고 실질적으로 이룩된 성과도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남북 정상이 지난해 3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경협 사업이 대북제재에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매체는 “판문점선언에서 밝힌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사업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지난 연말에 이르러서야 공동조사와 착공식을 겨우 진행했고,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밝힌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문제는 아직 논의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더딘 원인은 명명백백하다”며 “이는 속도조절을 운운하는 미국의 간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한·미 워킹그룹을 ‘남조선당국의 대북정책 작성과 집행을 실시간 감독·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규정하며 “저들(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남조선당국의 손발을 꽁꽁 옭아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연 언제까지 외세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말로만 자주를 외칠 때는 지났다”며 “더는 외세의 압력에 머리 숙이지 말고, 머리들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전날 논평에서 “민족의 드높은 기대와 열망과 달리 워싱턴 정가에서는 속도조절 타령이 계속 울려나와 온 겨레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지난달 26일 개최된 철도·도로 착공식을 ‘형식만 갖춘 반쪽짜리 착공식’이라며 “행성의 그 어디를 둘러봐도 착공식을 벌려놓고 이제 곧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선포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착공식이면 착공식이지 실질적인 착공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이고 당사자들이 모여 공사를 시작하자고 선포했으면 그만이지 누구의 승인이 있어야 실지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참으로 외세가 강요한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 때문에 입장 표명에 조심스러웠던 우리 정부를 대놓고 비판한 셈이다.
북한이 연일 우리 정부에 ‘민족 자주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북·미 핵협상의 장기화를 대비해 우리 정부에 철도·도로를 비롯한 남북 협력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는 압박의 신호로 해석된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