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당시 광주를 직접 찾아 무력진압에 반대했다고 기록한 책자가 38년 만에 처음 발견됐다. 시민군 무력진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 방점을 찍은 ‘미화’된 내용이지만 그동안 부인해온 전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을 측근인사가 확인하는 것이다.
부인 이순자 여사가 최근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남편인 전 전 대통령을 지칭한 발언이 논란이 된 가운데 그동안 5·18에 절대 개입한 적이 없다고 책임을 부인해온 전 전 대통령 행적의 실마리가 풀릴지 주목된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기간에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전 전 대통령을 옹호해온 고 천금성 소설가의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에 기록돼 있다”고 3일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 기록은 천씨가 신군부의 한축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인1988년 1월 발간한 책자의 후편 220~221쪽에 나온다.
해당 대목에는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소준열 소장이 새로 부임했다. 소 전교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머리를 맞댔다. 하루라도 빨리 평정을 시켜야겠다는 소 사령관의 말에 정 사령관도 동의했다. 그러나 현지로 내려온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고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전 보안사령관은 만약 계엄군이 사태수습을 위해 군사작전을 하면 대단한 희생이 따를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고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단한 희생’이 당시 계엄군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의 안전을 염려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양측의 인적 피해를 예상한것인지 여부는 문맥상 명확하지 않다.
다만, 탱크와 중화기로 중무장한 데다 평소 군사훈련이 잘 된 계엄군과 소총이 전부로 군사적 열세인 시민군을 고려할 때 시민들의 희생을 막아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5·18 기록관은 또 보안사령부의 주둔지를 고려할 때 당시 전씨가 현지로 내려왔다는 것은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5·18 기록관은 1980년 5월21일 전투병과교육사령부 혹은 광주비행장에서 전씨와 그 시점에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장에서 전교사령관으로 발령이 난 소준열 소장, 정호용 공수특전 사령관이 회동한 자리의 발언인 것으로 추정했다.
호남지역 계엄분소장 소준열 소장은 이날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전교사령관 발령을 약속받았고, 실제 5월22일 오전 10시 전교사령관 취임식이 예정돼 있었다.
고 천금성 소설가는 전씨가 보안사령관을 역임할 때 전속부관을 지냈다. 전씨를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로 통한다. 1981년 전씨의 행적을 미화한 전기(전두환-황강에서 북악까지)를 펴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5·18 기록관은 따라서 ‘전씨가 군사작전에 신중을 기하자고 한 대목은 전씨 부관출신인 천금성이 의도적으로 미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앞서 진종채 2군사령관은 1995년 검찰 수사에서 “1980년 5월18일에서 27일 사이 전두환 노태우 등이 광주비행장에 내려와 전교사령관, 505보안부대장을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2군사령부 참모들로부터 보고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백남이 전교사령부 작전참모는 당시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1980년 5월26일 오전 10시30분∼11시경 광주 공군 비행장에 전두환 사령관이 와 있는데, 왕래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연락을 상황실 근무자로부터 받았다"고 밝혔었다.
반면 전씨는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광주에 내려갔다면 작전 지휘를 받아야 했을 현지 지휘관들이 나를 만나거나 봤어야 하는 데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서술하는 등 지금까지 광주 현지 방문을 줄기차게 부인해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