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부모님께 나의 성에 대해 알려주지 말고 오로지 소녀로 기르라고 조언했다. 물론 그것은 효과가 없었다. 나는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년도 아니었다.”
독일인 린(Lynn D·34)은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2살이 될 때까지 7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50여명 이상의 의사들이 매달 자신을 찾아와 발가벗은 몸을 관찰하던 걸 서른이 넘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후엔 매주 성장 차단제와 상당량의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 린은 10대가 되면서 자해를 시작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였다. 자살도 시도했다.
의사의 권유와 부모님의 선택으로 린은 남성 생식기를 제거하고 여성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늘 성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제 그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독일이 유럽연합(EU) 최초로 새해인 1일부터 ‘간성(intersex)’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앞으로 독일에선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특징과 다른 사람들도 각종 서류 성별란에서 ‘제3의 성(diverse)’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독일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올해부터 공식 문서에 ‘다양성(diverse)'이라는 항목으로 남·여가 아닌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간성인 사람들에게 최선의 선택은 성별 항목을 비워두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11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주 당국은 더 이상 간성인이 두 성별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성별을 기록하는 출생신고서, 여권, 운전면허증 등 각종 서류의 성별 구분 항목에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성별 작성란을 아예 없애라”고 선고했다. 이에 독일 연방하원은 지난달 14일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다만, 제3의 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이 재판은 앞서 한 독일인이 출생기록부에 자신의 성별을 ‘여성’에서 ‘간성’으로 변경하려고 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하며 이뤄졌다. 당시 원고는 재판부에 자신이 X 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를 제출했다.
독일 간성 활동가들의 모임인 ‘3번째 선택(dritte option)’은 “‘제3의 성’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그러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여 지는 과정이 아직 남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엔에 따르면 간성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국가는 독일을 비롯해 캐나다와 덴마크, 아르헨티나, 방글라데시, 인도, 몰타, 네팔, 네덜란드, 뉴질랜드, 파키스탄 등이다. 미국은 특정 주에서만 가능하다.
이슬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