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폭로가 국회 운영위원회 이후 일단락되는 가운데, 연이어 터져나온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에 정부‧여당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2일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추가 반박했다. 자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자 3일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사무관이 제기한 폭로가 어느 정도 실체적인 진실에 가까운지는 조금 더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의 설명대로 ‘정무적인 판단’이 이뤄지는 의사 결정 과정을 신 전 사무관이 ‘외압’으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유튜브를 통해 신 전 사무관의 문제제기가 생중계된 만큼, 정부‧여당에서 충분히 설명할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신재민 논란’을 ‘김태우 논란’과 동일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악의적인 폭로’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을 통해 신 전 사무관을 향해 “공익제보로 가장한 정치적 주장” “3년차 사무관의 무모한 주장”과 같은 거친 표현을 쏟아 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정책조정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집을 요구 했는데, 김태우 사건을 정쟁으로 부풀린 방식과 똑같다”며 “개인의 무분별한 주장에 대해 사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부 발목을 잡으려는 행태가 유감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김태우=신재민’ 전략을 구사하는 데는 두 논란 사이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①실무자
김 전 특감반원은 6급 검찰 수사관으로 청와대 특감반에 파견돼 실제 첩보를 수집해 보고하는 실무 역할을 했다. 신 전 사무관은 행정고시를 통과해 기획재정부에서 5급 사무관으로 일했다. 둘 다 실무 과정에서 자신들이 직접 겪은 내용이라며 폭로했지만, 정부‧여당은 실무자가 전체 의사결정 과정과 구조를 알지 못하는 만큼 이들의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②청와대 정조준
김 전 특감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민간인 불법 사찰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사기업 인사에 개입을 시도했고, 적자성 국채 추가 발행에도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현 정권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을 만한 사안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논란이 커지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③불발탄
김 전 특감반원의 부적절한 첩보는 중간 단계에서 걸러졌고, 신 전 사무관이 제기하는 외압 의혹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 여당의 설명이다. 결국 문제될 게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논란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존재한다. 때문에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을 김 전 특감반원과 같은 케이스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①폭로 동기
김 전 특감반원의 경우 청와대 내부 감찰과 법무부 감찰 과정에서 개인 비위가 일부 확인됐다. 정부여당은 김 전 특감반원을 ‘비위혐의자’로 규정하며 그의 폭로 동기를 의심했다. 민주당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동기도 의심하고 있다.
특히 그가 사설 학원업체와 계약을 맺고 학원 강사로 활동하려고 했던 점, 지난 7월 기재부에서 퇴직한 뒤 한 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던 점 등을 거론한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이 유튜브 영상에서 폭로 배경에 대해 “먹고 살려고”라고 언급한 부분도 문제가 됐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신 전 사무관이 사적 이윤을 목적으로 폭로를 감행하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별다른 개인 비위가 확인되지 않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동기를 일단 의심부터 하기는 어렵다.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자 3일 새벽 유서를 남기고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는 “내 진정성이 의심받는 게 싫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②폭로 방식
김 전 수사관은 폭로 초기, 일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쏟아 냈다. 정확한 과정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김 전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문건 리스트는 한국당 손에도 들어갔다. 또 한국당 당협위원장 출신의 인물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스스로 정치적인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신 전 사무관은 유튜브와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내용을 공개했다. 일종의 전면전이었던 셈이다. 스스로 정치적인 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 남긴 유서에서 “나는 일베도 아니고 자유한국당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도 하고 싶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국당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이 사실인지를 따져보자며 관련 상임위 개최는 물론이고, 국정조사나 특검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다소 정제된 반응을 보였다. 평화당은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신 전 사무관의 제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제보가 허위이면 사실을 바로잡고, 제보가 사실이면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공공부문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정의당은 “한국당은 제사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며 “공익으로 판단한다면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어 자당의 이익으로 쓰려하지 말고 공익을 위해 사실 관계를 밝히는데 집중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