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추정’ 신재민, 전날 靑 청원… 유튜브선 “자살 생각 없다”

입력 2019-01-03 11:30 수정 2019-01-03 13:31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이병주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서로 보이는 문서를 남긴 뒤 잠적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지난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신 전 사무관 이름으로 된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의 제목은 ‘나는 왜 기획재정부를 그만두었는가-신재민’. 그가 유튜브에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적자 국채 발행 압력 등의 의혹을 폭로하며 올린 영상의 제목과 비슷하다. 이 청원은 A4 용지 27쪽 분량에 달한다. 청원자는 마지막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라며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청원 내용은 크게 4편으로 나뉘어 있다. 각 편의 제목은 ‘서문 : 글쓰기에 앞서’ ‘공무원의 역할’ ‘내가 기획재정부를 그만둔 두 번째 이유’ ‘보고’이다. 1편 마지막 부분에는 ‘2018.10.31. 신림동에서 ’라고 적혀있다. 신 전 사무관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자는 앞서 제기됐던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적자 국채 발행 압력 의혹 등에 대해 자신이 기재부에서 근무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자세히 서술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며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원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서는 “기재부 선·후배에게 누가 될 것 같아 (폭로를) 고민했다. 정치적 소재로 악용되면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면서도 “공무원을 그만둔 뒤 퇴직금을 받았다. 이 돈도 국민 세금으로 주는 것일 텐데 그 값어치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청원이 게시된 날 오후 3시쯤 신 전 사무관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급히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됐다”며 “공익신고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 “어떤 정치집단과도 연관 없는 순수한 공익제보”라고 강조한 뒤 “기재부에서 느낀 막막함과 절망감을 다른 공무원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폭로 이유를 털어놨다.

같은 날 신 전 사무관은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하며 폭로 이후 심적 고통을 전했다. 그는 “그분(기재부 여성 서기관)이 나에게 비망록을 쓰라고 했다. ‘이건 정권 바뀌면 이슈될 일이다. 시간 순서대로 써라’고 했다”면서 “(나는 못 썼지만) 다른 사무관은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 있어서 약을 받았다. 자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신 전 사무관은 3일 오전 7시 대학 친구에게 “요즘 일로 힘들다. 행복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는 예약전송 형식이었다고 한다. 친구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서울 관악경찰서는 신 전 사무관의 주거지를 수색해 A4 2장 분량의 유서 형식 글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인력을 총동원해 신 전 사무관의 소재지 파악에 나섰다.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이다. 한때 동명이인이 잠적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경찰은 신 전 사무관이 맞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