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운명 가를 ‘직권남용죄’, 우병우는 1심에서 ‘일부 무죄’

입력 2019-01-02 09:20

검찰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적 판단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조 수석 등을 고발한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민간인 사찰을 지시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 측은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여권 내부에선 논란이 되는 청와대의 불법사찰 의혹이 조 수석 등의 직권남용죄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간인 사찰은 없었고, 특별감찰반을 통한 공무원 세평 수집 부분은 그 자체로 위법한 건 아니라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죄 적용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보는 법원 판결의 추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정부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직권남용 혐의 사건에서 사안별 유무죄 판단을 달리한 기존 판결이 이번 사건 사법처리 과정에서 한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제 검찰 수사가 시작된 만큼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 판단 단계까지 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청와대 측이 사찰 지시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성 판단의 전제인 사찰 지시 여부부터 확인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법원은 직권남용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을 내놓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연학)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자신을 감찰 중이던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의 뒷조사를 하게 한 혐의 등 3가지 혐의만을 유죄로 봤다. 6가지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단순히 직무수행 행위가 위법하다고 평가된다는 이유만으로 상급 공무원의 지시 행위가 모두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직권남용’ 행위를 판단할 때 상급 공무원의 직무권한 범위, 지시 경위, 목적 및 내용, 위법성 인식 여부, 직무수행의 이익 주체, 상·하급 공무원의 관계 등을 종합해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에 따라 우 전 수석이 이 전 특별감찰관 사찰을 지시한 것은 유죄로 판단됐다. 당시 사찰 지시가 우 전 수석 자신에 대한 특별감찰 진행 동향을 파악하는 등 사적 이익을 위해 이뤄져 직무 권한을 남용했다고 본 것이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에 대한 사찰 지시 혐의 등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직권남용이 입증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문체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찰을 지시한 혐의와 관련해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문체부 공무원들에 대해 ‘찍어내기’식 인사를 할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우 전 수석이 알았다면 국정원뿐만 아니라 특별감찰반에도 굳이 세평 수집을 지시하고 각 세평을 대조해 신빙성을 판단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감반을 통한 공무원 세평 수집이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도 설명했다.

지난 31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원의 이 판례를 언급하며 조 수석에 대한 직권남용 인정이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검찰은 한국당이 고발한 주장을 바탕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불법사찰 여부 등 사실 관계는 앞으로 규명해야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청와대가 사찰 자체를 부인하는데 지금 단계에서 직권남용 구성요건을 따져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