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제도 미비 틈타… ‘감정 폭탄’ 조울증, 결국 살인 불렀다

입력 2019-01-02 09:18

조울증(양극성 정서장애) 환자가 자신을 진료하던 의사를 살해하는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연이어 터지면서 환자 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입원치료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심리치료보다 약물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정신질환자는 스트레스가 심화하고 있는 현대사회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지만, 환자 개인의 치료의지에 의존하고 있는 관리 시스템 자체는 허점이 많다.

의사단체들은 조울증 환자 박모(30)씨가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중이던 정신과 의사 임모(47)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1일 긴급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이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면서도 이 사건을 조울증 환자 전체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국희 한림대 정신건강의학 교수는 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조증이 심해지면 공격성이 두드러지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전했다.

다만 환자 관리를 위한 개선책은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조울증 환자는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3년 7만1627명이던 조울증 환자는 2017년 8만6362명으로 증가했다. 의학적으로 조울증은 약물 복용보다 입원치료가 더 효과적이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명수 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이사는 “조울증 환자는 치료가 중단되지 않고 이어가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최근에는 강제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져 자타의 위협이 분명할 때만 입원이 가능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가족, 의료진이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환자가 스스로 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의료진을 따라야만 입원치료가 가능한 구조다. 이상훈 오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조울증 환자는 조증으로 들뜨는 시기에 복약 거부가 커지고 치료순응이 잘 안 된다”며 “입원치료가 더 좋지만 조울증은 평소엔 멀쩡하게 보이고,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강제입원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에 의존하기보다 심리 상담으로 감정을 분출할 기회를 주는 게 더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을 거란 분석도 많다. 하지만 정신과를 찾아봐야 5분도 채 안 되는 치료밖에 받을 수 없다고 환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울증으로 15년 넘게 치료받고 있는 최모(43)씨는 “병원에 가서 내 힘든 점을 털어놓고 싶은데 진료시간은 길어봤자 3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환자는 임상심리 전문가가 있는 상담센터를 찾기도 하지만 상담료는 1시간에 7만~10만원에 달한다. 경기도 수원의 한 심리상담센터는 “조울증 환자가 약을 잘 복용하면서 상담치료를 병행하면 더 빨리 호전되기도 한다”며 “상담료가 비싼 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원장은 “진료 수가와 적체된 환자 수 등을 고려하면 진료시간이 5분을 넘기기 어렵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한 환자를 오래 보는 것보다 짧게 여러 번 보는 게 수익 측면에서 낫기 때문에 진료시간을 늘리는 데 투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학병원은 최근 특별진료비가 사라지면서 환자가 급증해 상담진료는 불가능에 가깝다. 서국희 교수는 “의사와 정서적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환자를 대할 때 환자를 자극할 수도 있다”며 “시간이 있어야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생길 텐데 지금처럼 환자가 몰리는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예슬 권중혁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