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병원에서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흉기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생전 고인이 이룬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지난 달 31일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 박모(30)씨가 휘두른 칼에 가슴을 찔려 숨을 거뒀다. 임 교수는 우울증, 불안장애 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 방안을 찾는데 몰두해왔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자살 심리 및 예방을 주제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연재 글을 모아 2016년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
임 교수는 “왜 하필 이 환자가 내게 왔는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고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환자들과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임 교수는 본인도 극심한 허리디스크 통증에 자살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환자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201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들이 그 순간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한다”며 “불안을 통제하고 합리적 이성이 회복되도록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환자가 고립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13년부터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보고·듣고·말하기’라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앞장섰다.
이번 사고 역시 임 교수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던 가해자박씨는 퇴원 후 수개월간 병원을 찾지 않다가 이날 예약도 없이 임 교수를 찾아왔다. 임 교수는 그렇게 한해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해 애쓰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사건이 알려진 지난 31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병원에서의 폭력 및 범죄 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1일 오후5시 현재 1만7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