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기재부의 반박을 재반박하고 나섰다. 국채 조기상환 취소, ‘적자국채’ 발행 과정에서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휴대폰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다며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신 전 사무관은 또 KT&G 사장 교체 시도, 적자국채 발행에 청와대 개입이 있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인데도 기재부가 정면으로 부인할 줄 몰랐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다만 국채 관련 내용 외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신 전 사무관이 추가 폭로를 예고하면서 기재부와 전직 5급 사무관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사무관은 1일 고려대학교 인터넷커뮤니티 ‘고파스’에 ‘신재민 선배님 요청으로 올립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국채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핸드폰에 옛날에 찍은 사진이 있다”며 국채 조기상환 취소, 적자국채 발행 시도 과정에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를 추후 영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해 12월 30일 국채 조기상환 취소, 적자국채 발행과 관련해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었다. 그는 “정권 교체기인 2017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을 낮추면 향후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판단해 세수가 20조원 이상 남았음에도 국채 조기상환을 취소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재부는 2017년 11월 1조원 규모 국채의 조기상환을 갑자기 취소했었다. 이 배경에 청와대 압력이 있었다는 게 신 전 사무관 주장의 요지다. 그는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도 검토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이튿날인 지난 31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3, 4년차 사무관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여러 변수를 검토하고 치열하게 토론해 내린 결론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구 차관은 “국채 조기상환 취소 및 적자국채 발행 여부와 관련해 세수여건과 당시 시장 상황 등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한 점을 감안했다”며 “기재부 내부는 물론 관계기관에서 여러 대안이 제기됐고 치열한 논의 및 토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 긴급 브리핑 직후만 하더라도 적자국채 발행과 관련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31일 고파스에 ‘신재민님 부탁으로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국채 관련 주장에 대한 증거로 “당시 바이백 관련 뉴스가 있다. 경제관계장관회의에 4조원 추가 발행하기로 한 안건도 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기재부 안팎에선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전 직장인 기재부에 대한 실망감도 보였다. 그는 “한겨레신문 출신인 청와대 인사를 사장에 선임하려 했다. 당시 (서울신문) 사장이 시인해서 언론에 보도됐는데 (기재부가) 이렇게 부인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사장 교체에 기재부가 개입한 것은 과도한 게 아니다’라는 기재부 해명에 대해서는 “기업은행이 지시를 받고 KT&G 사장 교체를 위해 주주권을 행사했다. 단순한 관리 강화가 아니었다”고 재반박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 지시로 기재부가 박근혜정부 때 선임된 KT&G 사장을 교체하려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추가적인 증거는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어떤 곳에서 누가 말했고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추가로 말할 수 있다”며 정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T&G 사장 교체 과정을 알 수 없는 위치였다는 기재부의 주장에는 “문서를 입수했고 이야기도 들었다. 언론에 유출된 카톡을 보더라도 사실인 것을 알 수 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알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 청와대가 몰랐다면 민정수석실에서 왜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려 했는지 조사해야지 문서유출만 조사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신 전 사무관은 잇단 폭로와 관련해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의에 저항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뒤에는 어떠한 집단이나 정당도 없고 신념에 따라 꿈꿨던 행동을 해본 것이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