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된 신년사에서 1년 만에 확 달라진 스타일을 과시했다. 단상에서 내려와 소파에서 신년사를 읽는 파격을 연출했고, 뿔테 안경을 벗은 모습으로 한층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이미지 연출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약 30분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서재로 보이는 곳에서 소파에 앉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의 뒤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사진이 걸렸고 책상 위에도 두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놓였다.
육성 신년사는 2013년 이후 7번째, 정장을 입은 것은 2017년 이후 3번째지만 세부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해 신년사 당시 김 위원장은 노동당 청사 연단에 서서 근엄한 표정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은색 양복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쓰는 등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 신년사 영상에서는 남색 계열의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뿔테 안경을 벗고 소파에 앉아 편안한 모습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카메라는 발까지 전신을 비췄다. 지난해에는 정장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소파 뒤쪽 벽면과 책상 등에 두 사람의 사진을 배치해 의도적으로 카메라에 담은 흔적이 역력했다.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상기시켜”
김 위원장이 서재 같은 분위기의 방에서 소파에 앉은 채 신년사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을 상기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장소가 센토사섬 회담 당시 대기했던 곳과 비슷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당과 공화국의 불변한 입장이고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남 관계처럼 일단 하자고 하면 못할 일이 없다. 앞으로 좋은 일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고 싶다”며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
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메시지에 화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초 미·중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올해 1~2월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고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