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이옥선 할머니 사기 당했지만… “시효 만료돼 구제 불가”

입력 2018-12-31 16:55 수정 2018-12-31 17:27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3) 할머니가 18년 전 이웃에게 전 재산 4000만원을 빌려주고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사기 피해 도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옥선 할머니는 1942년 16세의 나이에 중국 만주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가 2년 넘게 끔찍한 생활을 견디다 광복과 더불어 가까스로 벗어났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할머니는 해방이 된 후에도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 터를 잡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2001년 이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이웃의 절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줬다. 이웃 정모씨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넉넉하게 쳐 갚겠다고 제안해왔다. 할머니는 몇 푼 안 됐던 정부 지원금에 장사를 해서 모아 둔 전 재산 4000만원을 내어줬다. 돈을 갚기로 한 날짜가 지났지만 정씨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할머니가 돈을 달라고 찾아갔지만 “다음에 갚겠다”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던 할머니는 속앓이를 하다가 ‘나눔의 집’에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시설이다. 관계자들이 나섰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18년이 지나 10년을 만기로 하는 채권 소멸시효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앞서 23일 MBC 보도에 따르면 70대 후반인 채무자 정씨는 “(이옥선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나도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돈을 받으면 신세 진 사람들에게 갚고 나머지는 나라에 (환원하겠다)”라며 “쓰고 남으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겠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앞서 2010년 4월 생활비와 약값 등을 아껴 모은 2000만원을 보은군민장학회에 내놨다. 당시 할머니는 “나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젊은 인재를 육성해 국력을 키워 달라”라고 당부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