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명·18)는 반쯤 무너진 무허가 주택에서 세밑 한파를 힘겹게 견디고 있었다. 갈라진 벽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면 이불을 뒤집어써도 냉기가 피부에 닿았다. 지혜는 패딩과 모자로 중무장한 뒤 잠자리에 든다. 화장실은 온기가 전혀 없어 겨울철 목욕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세탁기도 얼어서 손을 불어가며 빨래를 하는 일이 잦아 겨울철엔 교복을 오래 입어야 했다. 지은 지 50년이 된 집은 항상 춥고 건조한 탓에 지혜는 겨울이 오면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지혜는 더위가 극심했던 올여름에도 주거빈곤의 고통에 시달렸다(국민일보 7월 31일자 5면·8월 2일자 6면 참조). 불결한 위생 상태와 냉난방 에너지 부족의 현실은 북극한파가 찾아온 12월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주거 현실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이 노인이나 장애인에 비해 턱없이 약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27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찾은 주호(가명·13)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샌드위치패널(특수합판을 조립한 형태)로 지은 52.8㎡(16평) 집은 여름엔 폭염에 그대로 노출됐었다. 패널 벽과 슬레이트 지붕은 매서운 겨울바람도 그대로 통과시켰다. 냉장고를 쓸 필요가 없어 현관문 앞에 반찬통과 식자재를 놓아뒀다.
주호네 집은 겨울철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 대신 화목난로를 땐다. 집 앞마당에는 성인 손으로 두 뼘 정도 길이로 자른 장작 50여개가 쌓여 있었다. 영하권의 추위가 이어질 때면 하루 40개 정도 장작을 땐다고 했다. 주호 할아버지는 살을 에는 바람을 참아가며 인근 산에서 폐목을 가져온다. 1주일에 세 번 정도 땔감을 구해와야 할머니까지 세 식구가 겨울을 날 수 있다.
여든인 주호 할아버지에게 장작패기는 고된 작업이다. 한 달쯤 전 장작을 패다 왼손 검지에 골절상을 입어 한동안 깁스를 했다. 손가락을 다쳤을 쯤에 뒷마당에 묻어둔 수도관이 터졌다. 낡은 수도관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지난여름 장마에도 말썽을 부린 수도관이다. 이 집은 수도관조차 지나지 않는 외딴곳이라 주호 할아버지가 직접 수도관을 집 뒷마당에 묻었다. 하지만 위에 시멘트를 올리는 작업은 노부부의 힘에 부쳐서 못하고 비닐로만 덮어뒀다.
겨울철 주호네가 가장 힘든 순간은 화장실과 부엌의 물이 얼었을 때다. 한파가 몰아칠 때 물이 얼면 녹이는 데만 보름가량 걸렸다. 이를 막으려면 온 식구가 하룻밤에 세 번쯤은 일어나 뜨거운 물을 콸콸 흘려보내야 한다.
전국에 지혜나 주호 같은 주거빈곤 아동은 94만4000여명이다. 이 중 8만6000여명은 비닐하우스, 쪽방, 무허가 주택 등에서 산다. 주거빈곤 아동은 신체적 불편함뿐 아니라 스트레스지수, 학업 발달에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지혜, 주호 같은 아동·청소년이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살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아동의 주거권은 법으로 보장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7조 3항은 국가가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보호자를 돕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특히 아동의 영양과 옷, 주거와 관련된 경우 필요시 물질적 지원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단순히 아동들의 사정이 딱하다고 생각하고 시혜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며 “주거기본법 제3조의 7항이 명시하는 주거약자 지원 조항에 장애인, 고령자뿐만 아니라 아동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주거기본법이 인정한 주거취약층은 임대주택 우선 공급, 주거비 지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