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몸 공공재 아냐” 낙태 여성 색출한 경찰 향한 규탄

입력 2018-12-31 00:27

“여성에게 나라는 없다. 여성의 몸은 공공재가 아니다”

SNS 상에서 #남경찰_임신중단색출 같은 해시태그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경남 남해경찰서에서 해당 지역 산부인과를 다녀간 여성 26명에게 “낙태를 한 적 있느냐”는 취지의 조사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다.

앞서 9월 경찰은 경상남도 소재의 한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하고 있다는 진정을 접수했다. 지난달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해당 병원을 다녀간 적 있는 여성 26명 인적사항을 확보한 뒤 낙태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실제 시술을 받은 환자는 한명으로 이 여성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낙태 여부에 초점을 맞춰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경찰은 출석한 여성들에게 낙태한 적이 있는 지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밖에도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갈 수 없다”는 여성에게 계속해 출석을 요구하거나 “개인 정보가 어디서 났느냐”는 물음에 “출석하면 알려주겠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은 “임신 중 사산돼 치료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지역 여성단체들은 24일 경남지방경찰청 수사과를 찾아 “개인 의료정보 수집을 통한 경찰의 반인권적 임신중절 여성 색출 수사를 규탄한다”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여성단체들은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경찰은 여성에 대한 반인권적 수사 실태를 파악하고 시정조치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한국여성민우회도 20일 성명을 통해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뜨겁고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검토하는 이 시점에 낙태죄로 여성을 처벌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경찰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권과 인권을 침해한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헌재는 현재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유남석 신임 헌법재판소장은 “낙태죄 폐지 관련 헌법소원을 연내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나 결정은 해를 넘겨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진정이 접수됐기 때문에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여성들은 SNS를 통해 사태를 규탄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는 수사 책임자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여성에게 나라는 없다”는 글과 함께 해당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또 다른 여성은 “진정인의 단순 추정을 통해 접수된 제보 하나로 개인의 진료기록을 열람하고 색출해 취조한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이는 “여성의 몸은 공공재가 아니다. 낙태죄는 여성의 인권을 탄압하는 비인권적인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한 여성은 “여성이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찾아 검진을 받는 것은 필수”라며 “살인 사건 현장을 우연히 지나갔다고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