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장 막으려 故염호석 시신 빼돌린 경찰 기소… 사건 다시보기

입력 2018-12-30 15:41

고(故) 염호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분회장 시신탈취사건에 개입한 전직 경찰관 두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삼성 측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염씨 장례식이 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지는 것을 저지한 양산경찰서 정보과 간부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이었던 염씨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2014년 5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 뿌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강원도 강릉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생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일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에 가벽을 설치해 업무공간을 분리거나 비조합원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등 극심한 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원이 많은 곳은 폐업을 단행했다. 수사 과정에서 노조와해 문서 약 6000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가 숨지자 사측은 염씨의 죽음을 축소하려 시도했다. 염씨는 유서에 자신의 시신이 발견되면 가족이 아닌 동료들에게 장례를 맡기겠다고 적었다. 가족장(葬)이 아닌 노동조합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이 아버지를 이용해 시신을 빼돌렸다. 최모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는 염씨의 시신 발견 다음날 그의 아버지를 만나 6억원을 위로금 명목으로 건넨 뒤 염씨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도록 종용했다. 노조장으로 인해 노조원이 결집해 힘을 키울 구실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강제로 염씨의 시신을 강탈해갔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돼있던 시신을 경찰 수백 명이 들이 닥쳐 방패와 최루액으로 조문객들을 강하게 밀어붙인 뒤 가로채갔다.


검찰은 염씨의 아버지가 삼성전자서비스 사측과 합의한 뒤 노조에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통보하고 경찰 3개 중대의 도움을 받아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옮긴 뒤 밀양에 있는 한 화장장에서 서둘러 화장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과정에서 양산경찰서 정보과 간부 A씨는 함께 기소된 B씨와 소속 정보관 등에게 삼성 측 편의를 봐줄 것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염씨의 아버지 지인을 동원해 장례가 가족장으로 치러지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노조원 모르게 아버지가 사측이 건넨 합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소속 정보관에게 돈을 전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또 염씨 아버지 지인에게 “노조원들이 시신 운구를 막고 있다”는 취지로 허위 112신고를 하도록 해 경찰 경비병력을 투입할 수있도록 조작했다.

아울러 A씨와 B씨는 검시담당자가 아니면서 염씨의 시신을 신속하게 화장할 수 있도록 검시필증을 발급 받아주면서 노조원들의 눈을 속였다.

앞서 염씨 시신탈취와 관련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교섭 과정에 개입하고 6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전직 경찰청 정보관 김모씨는 지난 7월 구속기소됐다. 염씨 부친 역시 “삼성 관계자와 만난 적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염씨 아버지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