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 초점] 조금 더 기다려줘도 된다

입력 2018-12-29 12:05 수정 2018-12-29 12:06

“그래, 열심히 해. 이만 올라가 볼게.”

지난 27일, 담원 게이밍과의 KeSPA컵 8강전을 앞두고 스튜디오 앞 복도에서 김정균 SK텔레콤 T1 감독은 ‘마타’ 조세형에게 이같이 말하고 계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경기는 서울 강남구 아프리카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스튜디오가 조성돼있는 2층엔 선수 대기실로 쓸 수 있는 방이 1개뿐이다. 두 팀이 대결을 벌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특성상 1개 팀은 자연히 다른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이날 SKT는 3층에 대기실이 배정됐다. 김 감독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브라운관을 통해 대회를 지켜봐야 했다.

김정균 감독은 현재 밴픽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경기에 앞서 큰 틀에서 작전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상대의 전략을 완벽히 알지 못하는 이상 현장에서의 밴픽은 무대에 오른 이들의 몫이다. 즉흥적이고 단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밴픽의 책임을 김 감독에 묻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옳은 비난 여론이 아니다.

그렇다고 경기장에서 밴픽에 관여한 코치와 선수들에게 패배의 육중한 책임을 묻는 것도 짓궂은 일이다. 합을 맞춘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팀들이 많다. SKT의 경우 ‘페이커’ 이상혁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올스타전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게 불과 2주 전이다. 한화생명, kt, 아프리카, 진에어, 킹존 등 라인업 변동이 큰 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로스터 구성을 마치고 나서도 스트리밍 방송, 외부 행사 등이 겹치며 조직력을 온전히 다질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난 시즌 대비 로스터에 큰 변화가 있었던 팀들이 있고, 유지로 가닥을 잡은 팀도 있다. 이것만으로 유불리를 따지긴 어렵지만 프리시즌 성향이 강한 KeSPA컵 성적으로 내년을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KeSPA컵을 훌륭한 ‘스파링’으로 생각하는 팀들이 많다. 본 무대라 할 수 있는 LCK를 앞두고 이렇다 할 무대 경기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진에어는 세트마다 선수를 스왑하며 실전 감각을 점검했다. 상당수 팀은 프로 무대에 오른 적 없는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좀 더 먼 곳을 바라봤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을 속단할 순 없다. 이번 대회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팀들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 시즌을 더욱 치열하게 하는 흥미 요소가 될 터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