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구 해병대사령관 이례적 “가짜뉴스” 발언 배경은

입력 2018-12-29 06:00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이 28일 해병대2사단을 방문해 지휘관과 참모 등에게 9.19군사합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이 28일 “최근 SNS상에 사령관이 전혀 언급한 바 없는 NLL(북방한계선) 비행금지 구역 설정에 반대한다는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는데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전 사령관의 ‘팩트 체크’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전 사령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계속 양산되는 온라인 루머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진구,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반대 발언 안 했다”

전 사령관은 이날 수도권 서쪽 지역을 방어하는 해병대2사단을 찾아 장병들을 교육하는 자리에서 “군은 본연의 임무에 매진함으로써 국가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또 “해병대는 9·19군사합의를 적극 이행해 한강하구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토록 노력해야 한다. 군사합의 지원을 위해 전 장병은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강인한 교육훈련을 철저히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사령관은 지난달 5일부터 12월 9일까지 35일간 한강하구 남북공동수로조사를 지원한 장병들을 격려하며 “해병대는 한강하구에 대한 완벽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향후 추진 예정인 한강하구의 공동 이용을 군사적으로 보장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한반도 안보 상황과 9·19군사합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장병들에게 가짜뉴스에 대한 발언을 했다. ‘전 사령관이 9·19군사합의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팩트인 양 왜곡하는 ‘지라시’나 보수단체 성명 등을 의식해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전 사령관은 자신이 군사합의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말을 공식·비공식적으로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국방부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 소식통은 “전 사령관뿐 아니라 해병대 내부 회의에서도 9·19군사합의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나온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날 부대 방문이 장병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전 사령관이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전 사령관이 보수성향 SNS 이용자들로부터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불리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SNS를 통해 유포된 한 보수단체의 ‘긴급성명서’에는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의 정당하고도 적법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 거부 및 무효화 촉구 선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성명서에는 또 “전진구 사령관이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이는 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이 아니라 국가 공무원법상 상관의 불법부당한 지시 명령은 따르지 않고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정당한 행위’라고 밝힌 데 대해 경의와 찬사를 보내는 바”라고 적혀 있다. 성명서 말미에는 “우리는 또한 만에 하나 문재인정권이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의 충성된 합법 행동에 대해 부당한 보복행위를 시도할 경우 거국적인 항거와 정권타도 행동에 돌입할 것임을 엄숙히 경고한다”고 돼 있다.

해병대 예비역 단체인 ‘해병대전우전국총연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사령관 전진구 중장은 불법부당한 지시·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정당 행위로써 이번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따를 수 없다고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이 나온 데에는 ‘해병대가 최근 서해 NLL 등에 비행금지구역을 추가 설정하는 데 대해 작전상 우려되는 점이 많아 반대한다는 입장을 국방부에 전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

서해 NLL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현재 서해 NLL 일대와 한강하구의 비행금지구역은 설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우리 군 당국은 9·19군사합의 채택에 앞선 북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서해 NLL 지역 등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앞으로 꾸려질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서해 NLL뿐 아니라 한강하구에서의 비행금지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 협상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행금지구역 기준선을 잡는 문제가 쉽게 풀릴 가능성은 떨어진다. 기준선을 NLL로 잡으려는 남측과 NLL을 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측 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릴 수 있다. 나아가 이 문제는 서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맞물려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 역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이후로 미뤄진 상황이다.

앞서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기준 남북으로 10~40㎞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보수진영에선 추가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경우 정찰자산 운용이 제한돼 대북 감시망에 구멍이 뚫릴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