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절충” “벌주는 것” “현역보다 유리” ‘교도소 36개월 대체복무’ 엇갈린 평가

입력 2018-12-29 05:00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에 관한 법률안 입법 예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로 ‘교도소 36개월 합숙 방안’ 정부안이 확정되면서 찬반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는 28일 오는 2020년부터 시행하는 대체복무제를 입법 예고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종교적 병역거부자는 군대에 가는 대신 현역(육군 기준)의 배인 36개월 간 교정시설(교도소, 구치소 등)에서 24시간 생활하며 근무하게 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36개월 안은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의 복무기간(34~36개월)과 형평성을 유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로 취사와 물품보급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주 업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또 다른 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소속 활동가 오경택(30)씨는 이날 국방부 앞에서 열린 참여연대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대체복무제의 기간을 현역의 배로 설정한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상징적 처벌”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라는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디딘 만큼 이를 둘러싼 시민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합리적인 절충안”
대학생 정모(26)씨는 “원래 대체복무에 반대했다. 현역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방부가 내놓은 안을 보니 복무 기간이 36개월이라는 점과 육체노동이 주가 되는 등 복무 강도가 높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다만 1년 내에서 복무기간을 조정할 여지를 남겨뒀던데 향후 복무 기간이 줄어들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이모(34)씨는 “시민들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대체복무제의 악용 가능성인데 복무 기간이 길고 출퇴근이 아닌 합숙이라는 점에서 그런 우려가 불식된 것 같다. 36개월이 긴 감이 있지만 대체복무제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감안했을 때 합리적인 절충안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입장에선 현역보다 더 오래 근무해야 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군대의 상하 수직적 분위기, 폭력적 문화 등 고질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쨌거나 현역 군인들보다 이익을 얻는 것이므로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30)씨는 “현역의 2배에 이르는 기간, 출퇴근 아닌 합숙근무, 교정시설 업무가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역과 공평한 수준이다. 또 교정직 공무원을 새로 뽑는 대신 병역거부자 인력으로 대신하면 되니까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개인의 양심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선진국으로 한걸음 내딛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년 너무 길고 교도소 근무 부정적”
취업준비생 조모(26·여)씨는 “사람을 강제로 교도소, 구치소에 둔 후 현역의 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킨다는 것은 벌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건 정부가 대체복무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대체복무제는 현재 일률적인 징병제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에 처벌적인 성격을 띄어선 안 된다. 국방부가 여론을 의식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임모(37)씨는 “3년이면 20대로 보낼 수 있는 기간의 약 30%에 해당한다. 이 정도의 시간을 교정시설에서 보낸 사람들이 이후 사회에 나왔을 때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지금도 공익이냐, 현역이냐 등에 따라 선입견이 심한데 양심적 병역거부, 3년 간 사회와 괴리, 교정시설에서 근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환경을 겪은 이들은 더 심한 편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가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정부안에 대해 반인권적 안이라며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여전히 현역에 비해 유리...불공평”
직장인 김모(29)씨는 “여전히 현역들이 불공평하다. 많은 현역 군인들이 근무 기간보다 내무 생활 자체를 힘들어한다. 또한 이런 사례를 한번 인정해주면 또 다른 이익집단의 요구가 있을 거다. 그들이 ‘병역 거부자들의 요구는 인정해주는데 우린 왜 안 되냐’고 따지다보면 결국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아무도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을 만한 방안을 내놓아야하는데 지금 방안은 여전히 부족하다. 기간을 더 늘리거나 내무반 생활을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국방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도입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 국제인권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그간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현역 군복무기간의 최대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체복무신청자를 공정하게 심사할 수 있는 독립된 심사기관을 마련하도록 여러 차례 권고했다”며 “국방부의 법률안이 그대로 제정된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물론 큰 기대를 가지고 주목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