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없이 5G? 할테면 해봐라’ 자신 넘치는 화웨이

입력 2018-12-29 05:00
화웨이가 신년사를 통해 미국과 서방세계의 견제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구오 핑 화웨이 순환 회장

구오 핑 화웨이 순환회장은 28일 ‘불은 금을 연단한다’는 제목의 신년사를 통해 최근 상황에 대한 화웨이의 의지를 드러냈다. 핑 회장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성공은 위대하다’는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격언을 소개하면서 화웨이가 2018년 외부 압박에도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핑 회장은 특히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화웨이 5G 장비 도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5G 시장에서 화웨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스타선수가 없는 NBA(미국 프로농구)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타플레이어가 없어도) 경기는 되겠지만 전문성, 통찰력, 비범함 등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에서 화웨이는 선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화웨이 장비 도입을 막더라도 기술적으로 앞서있기 때문에 결국 화웨이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 추이. 화웨이 제공

자신감의 바탕에는 지금까지 화웨이가 쌓아온 실적이 있다.

화웨이의 2018년 매출은 1085억 달러(약 121조원)으로 지난해보다 21% 늘었다.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판매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대를 돌파했다. 내년 4분기에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1위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통신장비 분야에서 올해 28%의 점유율로 노키아(17%), 에릭슨(13.4%), 시소코(8.3%), ZTE(7.8%)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신년사에서 이미 26개 통신사와 5G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1만개 이상 5G 베이스 기지국을 구축했고, 160개 도시와 포춘 500대 기업 중 211곳이 화웨이와 협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미국의 압박은 더욱 강해지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이 중국 정부의 지령을 받아 운영되고 있으며, 통신장비가 미국을 염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마트폰의 경우 화웨이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상태지만 통신 장비는 미국이 가장 큰 고객이다. 실제로 행정명령이 내려지면 화웨이가 입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개빈 윌리엄슨 영국 국방장관도 화웨이 5G 장비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화웨이 5G 장비 도입을 거부하는 나라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기업 중 유독 화웨이가 십자포화를 얻어맞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IT분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IT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IT 굴기’, ‘반도체 굴기’ 등으로 불리는 중국 국가차원의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의 일환이다.
반면 미국은 눈앞에 진행 중인 무역전쟁에서 이기고, 나아가 IT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도전을 뿌리쳐야 한다. 중국 IT 기업 중 선두에 서 있는 화웨이를 압박하는 것이 가장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캐나다에서 체포된 이후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은 극대화했다. 중국 입장에선 단순한 사건이 아닌, 화웨이를 견제하려는 행동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중국에서는 애플 등 미국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도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