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화재 겪고도… ‘외양간 고치기’ 미뤄버린 통신재난 방지책

입력 2018-12-28 10:30 수정 2018-12-28 10:46

정부가 27일 전국 모든 통신지사에 백업(예비)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방안 등을 담은 통신재난 대비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일대 주민과 소상공인 등이 큰 피해를 입자 내놓은 재발방지책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과 시점이 빠진 원론적인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사들의 투자 확답이나 기한 확정같이 풀기 어려운 문제는 막연히 뒤로 미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통신재난 방지 및 통신망 안정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2차관은 모두발언에서 “통신국사 한 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국민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대책은 정부와 유무선 통신사들이 전국 모든 통신지사에 통신 백업망을 구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백업망을 구축하면 특정 통신지사에 화재 등 재난이 일어나도 곧바로 통신 서비스가 복구된다. 다만 정부는 백업망 구축 방식과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채 내년에 다시 추가 논의하겠다고만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시점은 정해진 게 없다”며 “통신사들의 투자여력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달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대책대로라면 D급 통신지사까지 백업망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전국 통신지사 870여곳 중 800여곳에 대한 백업망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광케이블과 중계기 등 통신장비를 새로 설치해 통신망을 이원·이중화하게 된다. 이원화는 통신지사 간 통신 우회로를 하나 더 마련하는 방식, 이중화는 특정 통신지사로 연결된 통신경로를 하나 더 늘리는 방식이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이 같은 백업망 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이번 대책의 실효성을 두고 정부와 업계 간 의견이 엇갈린다. 과기정통부는 “일부 중소 사업체들을 제외한 메이저 업체들은 백업망 구축에 동참하기로 했다. 시기의 문제”라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방식도 정해지지 않아 확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통신시설 관리 강화 대책’의 실효성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이전까지 주요 통신지사 80여곳만 직접 점검했지만 내년부터는 모든 통신지사 870곳을 직접 점검하고, 점검 주기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관리 여력이 이 정도 수준에 못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통신지사 80여곳만 집중 관리하고 있을 때도 백업망 설치 의무를 위반한 통신지사 6곳을 잡아내지 못했다.

이번 대책에서 무선 데이터 로밍 대책이 빠진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는 음성·문자에 대해서만 국내 이동통신 3사 간 로밍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단 특정 지역에 머물며 쓸 수 있는 와이파이망은 3사가 공유하도록 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당장 재난 상황에 필요한 서비스부터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간 망 부하 문제 탓에 데이터 로밍은 앞으로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