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동된 젠지표 성장 프로세스

입력 2018-12-27 07:00 수정 2018-12-27 07:00
‘큐베’ 이성진

‘슬로 스타터’ 젠지가 대회 중 경기력을 끌어올리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젠지의 성장 프로세스는 각별하다. 지난해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대회 초반 RNG(중국)에 2연패를 당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꾸준히 경기력을 끌어올려 기어코 우승컵에 닿았다. 이 같은 ‘슬로 스타터’ 기질은 국내 대회에서도 잦게 보여줬다. 젠지는 중하위권 팀들에 허무하게 패하다가도 강팀을 만나면 특유의 끈끈한 경기력으로 깜짝 승리를 거머쥐곤 했다.

젠지의 성장 프로세스는 이번 KeSPA컵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부전승으로 1라운드 8강부터 경기를 치른 젠지의 첫 상대는 샌드박스 게이밍(전 배틀코믹스)이다.

이번 대회 첫 1부 리그(롤챔스) 팀 간 대결이었다. 젠지는 2대 0으로 이기긴 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경기였다. 특히 상체에서 크게 흔들렸다. 1세트에서 ‘큐베’ 이성진의 아트록스가 잇달아 ‘와이저’ 최의석의 우르곳에 솔로킬을 내줬다. 여기에 카밀을 고른 ‘크러시’ 김준서가 폭넓은 맵 리딩으로 젠지 상체를 뭉개버렸다. 바텀에서 무난하게 성장하며 중반부터 폭발적인 딜링을 뿜어낸 ‘룰러’ 박재혁이 없었다면 속절없이 젠지가 무너졌을 경기였다.

2세트 역시 박재혁에게 승리 지분이 몰렸다. 이즈리얼을 고른 박재혁은 상체에서의 열세를 침착한 비전이동 컨트롤로 극복했다. 카직스-갈리오-이렐리아 등 돌진 조합을 꺼낸 샌드박스가 이즈리얼을 암살하려 했지만, 박재혁의 그림자만 밟았다. ‘라이프’ 김정민의 찰떡같은 커버링으로 박재혁은 완벽에 가까운 대미지딜링을 보여줬다.

젠지의 피드백은 확실했다. 젠지는 2라운드 8강에서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스플릿 우승팀인 킹존 드래곤 X를 만났다. ‘데프트’ 김혁규, ‘투신’ 박종익, ‘폰’ 허원석 등을 수혈하며 막강한 라인업을 보유한 팀이기에 확실한 개선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피넛’ 한왕호

뚜껑을 열자 젠지는 확연히 달라졌다. 불안요소로 꼽혔던 포지션이 개선되는 것을 넘어 강점으로 부각됐다. 무엇보다 ‘피넛’ 한왕호의 올라온 폼이 고무적이다. 한왕호가 살아나자 라인 전체에 활기가 돌았다. 이성진은 우르곳, 아칼리를 번갈아 고르며 대규모 교전마다 맹활약했다. 룰러-라이프로 이어지는 바텀 듀오는 꾸준했고, ‘플라이’ 송용준은 2세트 연속 조이를 골라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젠지의 성장 프로세스가 어디까지 닿을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젠지의 4강 상대는 kt다. ‘마지막 돌풍’ GC 부산을 상대로 깔끔한 승리를 거머쥔 kt는 언제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우승 후보다. 젠지가 kt라는 거산을 상대로 얼마큼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28일 저녁에 확인할 수 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사진=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