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일째 75m 굴뚝서 내려오지 않는 노동자들, 함께 단식하는 사람들

입력 2018-12-26 17:18 수정 2018-12-26 17:36
박승렬 목사. 김동우 기자 촬영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75m 굴뚝. 세상보다 높은 곳에 세상 가장 낮은 이들이 올라가 410일째 내려오지 않고 있다.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굴뚝에 오른 파인텍 노동자 2명의 이야기다. 아기 예수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성탄절, 이들은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돌파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목동 CBS 사옥 뒷 출입구 앞에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인 박승렬 목사,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송경동 시인,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이 지난 18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이다. 파인텍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다.

“성탄을 앞두고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오셨는데 그 낮은 곳이 어디일까라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굴뚝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노동자들을 우리가 400일 넘게 외면하고 있었더라구요. 그 분들을 외면할 수 없어 단식하며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박 목사는 이들이 굴뚝에서 내려올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과 소금 효소만으로 허기를 달래는 그의 모습은 수척해보였다. 매일 오전 파인텍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를 앞을 찾아가 노동자와의 대화를 요청하며 오후 찾아오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은 더 야위어간다.

25일 의사 두 명과 나 신부, 이동환 목사는 굴뚝 위를 찾아갔다. 가로 폭이 1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발을 딛고 선 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짧게 기도하며 시민들과 일본에서 온 언론인이 선물한 쿠키를 전달했다. 두 노동자의 몸무게는 농성 전보다 10㎏ 정도 빠져있었다. 혈압도 100 이하로 낮았다. 자려고 누웠을 때 다리도 펼 수 없는 공간에서 400일을 넘게 보냈기에 이들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박승렬 목사 제공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박 목사가 요즈음 마음에 품고 있는 성경 말씀이다. 예수를 품었음에도 마땅히 누울 방이 없었던 당시를 생각했다. 박 목사는 “우리 마음에도 어려운 이웃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 한 켠의 작은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들을 억지로 내려오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도우심 외에는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박 목사에게는 두 딸이 있다. 성탄을 함께 보내지 못함에도 그들은 아버지의 단식을 응원했다. 결핍 속에 채워짐을 배우듯이 아버지의 단식으로 이 땅에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목동의 한 교회가 찾아와 함께 눈물 흘리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 한국 교회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

박승렬 목사 제공

새해 많은 교회가 성찬을 준비하듯이 단식 중인 이들도 이 땅의 낮은 모든 이와 함께 하는 진정한 성찬을 꿈꾸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단식이 그 어떤 성찬보다 뜻 깊을 수 있는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내가 관심 없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까지도요. 그들과 함께 사랑으로 회복하는 게 성찬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게 참 된 성찬이 아닐까요. 노동자라고 해서 멀리하지 않으며 우리의 배고픈 이웃과 함께 주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는 그런 세상이 참 세상이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라 믿습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