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형제, 자매간의 다툼은 당연하다

입력 2018-12-26 16:15

10살 여자 아이 C와 9살 여자 아이 S는 연년생 자매이다. 다툼이 심한 데다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많은 듯해 부모는 걱정이 많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엄마는 언니만 예뻐해” 라고 말하며 작은 일로도 양보 안하며 질투하기 일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다정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기를 원한다. 사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녀들을 친구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녀들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뿐이다. 부모가 자녀 간의 갈등에 개입하는 것은 이걸 방해 할 뿐이다.

형제 자매간에는 서로 간에 불편한 심정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분리되고 경계선이 생기는 것처럼, 동기 간에도 경계선이 생겨야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본능적이고 당연한 경쟁과 질투심에서 비롯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이런 감정들을 다 부정하고 “사이좋게 놀아라” “너희들은 어째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거니?” “엄마가 들어보고 시시비비를 가려 줄 테니 얘기를 해봐” 라는 식의 접근은 보나 마나 백전백패이다.

부모는 감정과 행동을 분리해서 이해해야 한다. 행동은 아이들의 문제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남겨두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한 그러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동생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싫구나!” “언니는 엄마 아빠 모를 때만 골라가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구나”라는 공감적인 말들이 실제로 감정을 삭이는 것을 돕는다. 일단 한번 말하여지거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면 불행한 감정은 누그러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불행한 감정을 읽어주지 않을 때 그 감정은 내면에서 쌓인다. 부모가 아이의의 감정을 들어주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할 때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나쁜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하면 자녀들은 자신의 감정과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창피함을 느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싸움을 하는 것도 친밀감의 한 표현이다. 형제 자매들은 항상 서로 잘 협조하며 ‘사이좋게’만 지낸다면 서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부정적인 감정은 억눌러야 한다는 것과 같은 메시지이다. 오히려 감정이 억압되어 친밀함이 없는 관계를 만든다.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를 감정이 박제된 긴장된 관계로 만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회피하게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공감해줄 충분한 시간을 가질 여건이 안 된다면 서로의 억울함, 분노, 슬픔, 외로움, 고마움을 전달 할 수 있는 ‘우편함’을 만드는 것도 좋다. 주 1회 정도 가족회의에서 같이 이야기 해본다. 부정적인 감정은 글로 쓰면서 확실히 스스로 감정의 존재를 알게 하고 객관화할 뿐더러 가족회의에서 공감은 받게 되면 스스로 감정을 정화할 능력도 생긴다.

동기간의 ‘거짓 평화’를 강요하지 말자. 이런 거짓 평화가 서로의 미움을 키우고 화해도 막으며, 용서할 기회도 박탈한다. 동기간에 불화는 당연하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