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냉면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착공식에 북측 주빈으로 참석한다. 남북 고위급 회담의 북측 단장으로서 각종 남북 행사에서 여러 차례 자극적인 발언과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리 위원장이 이번에는 남측의 반감을 감안해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리 위원장의 발언이 남측에서 논란이 된 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북측에 설명하고 우려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 위원장은 고위급 회담 카운터파트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함께 이번 착공식의 주빈으로 이름을 올려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리 위원장은 지난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우리 경제인들과 식사를 같이하면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식으로 면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발언의 진위를 놓고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리 위원장이 남북 경제 협력이 더딘 상황에 대한 불만을 우리 경제인들에게 표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 위원장은 또 10·4 선언 11주년 기념식 때 방북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에게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다.
남북 대화의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이처럼 거듭 설화(舌禍)를 빚은 리 위원장은 이번 착공식에서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 취재진은 리 위원장과의 접촉 과정에서 냉면 발언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남북 군사 실무회담에서 수석대표를 맡아 리 위원장을 직접 상대해본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25일 “냉면 발언에 관해 해명하거나 사과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질문을 해도 답하지 않고 오히려 남북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세력이 자신의 발언을 곡해해 악용하고 있다고 우리 측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남측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직설적인 리 위원장이 계속 남북 관계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리 위원장이 갑자기 공손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겠지만 잔칫날이라 할 수 있는 착공식에서 지나치게 강경한 발언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호락호락하지 않고 협상 상대로 까다로운 모습을 이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번 착공식에 관한 대북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고 외교부가 이날 밝혔다. 외교부는 “착공식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와의 협의가 24일(현지시간)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 2차 회의를 통해 미국과 사전 조율을 거친 뒤 착공식 물품의 대북 반출에 관한 제재 면제를 유엔 안보리에 신청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