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에 기사를 게재해온 스타 기자의 기사 날조 파문이 계속 커지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 프리랜서 기자 클라스 렐로티우스(33)가 7년 가까이 허위·날조 기사를 써온 것이 드러나자 슈피겔은 독자들에게 사과하고 렐로티우스를 해고했다. 하지만 렐로티우스가 독자들을 상대로 가짜 모금 활동까지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된데 이어 독일 주재 미국 대사가 렐로티우스의 미국 관련 기사에 해명을 요구하는 등 독·미 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고 23일 월스트리트지널(WSJ) 등이 보도했다.
렐로티우스는 2014년 CNN 선정 ‘올해의 언론인’에 선정되는 등 특종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려왔다. 올해는 내전 때문에 터키로 간 시리아 난민 고아 형제 기사로 독일에서 “읽기 쉽고, 시적이며, 사회이슈를 잘 다뤘다”는 극찬과 함께 ‘올해의 기자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가 2011년부터 슈피겔 지면과 온라인판에 게재한 기사 60여건 중 최소 14건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인터뷰를 날조한 것이 드러났다. 특히 미국 관련 기사에서 날조가 많았다. 사형 집행장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미국 여성 인터뷰,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예멘인 인터뷰 등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었다. CNN은 렐로티우스에게 줬던 ‘올해의 언론인’ 시상을 취소했다.
렐로티우스의 기사 날조 행각은 지난달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취재한 그의 기사에 대해 함께 취재한 동료 기자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드러났다. 기사에 언급된 사람들은 슈피겔의 조사에서 렐로티우스를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결국 슈피겔은 지난 19일 사과문에서 “1947년 창간 이후 최악의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슈피겔의 업적과 언론 전반의 신뢰성이 손상됐다는 것을 인정한다. 슈피겔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슈피겔은 “렐로티우스가 기자로서 명성이 높아질수록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져 허위 내용이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렐로티우스가 독자들을 상대로 가짜 모금 활동까지 벌였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시리아 난민 고아 형제를 돕기 위해 기부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독자에게 보냈는데, 기부금이 그의 계좌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기사의 일부는 허위였다. 뒤늦게 기부 캠페인의 존재를 인지한 슈피겔은 그를 기부금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 하기로 결정했다. 슈피겔은 23일 홈페이지에 “우리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검찰에 넘기고 고발장을 접수하겠다”는 공지를 띄웠다.
이번 사건은 독일과 미국간 외교 문제로까지 커지고 있다. 렐로티우스는 평소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로 유명했는데, 그가 쓴 미국 관련 기사 중 상당수가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21일 슈피겔에 서한을 보내 “렐로티우스의 가짜 뉴스는 대부분 미국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그동안 미국을 비판한 그의 기사에 대해 전면적으로 허위 여부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지자인 그리넬 대사는 트위터에 “슈피겔은 반미 편향적인 매체”라는 글과 함께 미국 비판 기사를 담은 슈피겔의 표지 사진들을 띄우기도 했다.
슈피겔 측은 “렐로티우스의 사기 행위에 모욕감을 느낀 미국인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슈피겔의 편집 방향 자체를 문제삼은 그리넬 대사에게 “미국에 대한 비판 기사는 미국에 대한 편견에 따라 왜곡한 기사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고 반박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